아무리 부정하려해도 부정할 수 없는 게 있다.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스타세일러의 데뷔작 <사랑은 여기에 있다>는 그 누가 제아무리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세밀히 들여다보아도 확실히 브릿 팝의 전형적인 네트워크에 공유되어 있다. 이제 겨우 약관(弱冠)을 넘긴 음악 컨덕터 제임스 월시(James Walsh, 1980년 생)가 십대 시절 자연스런 연결고리에 의해 몸으로 체득하고, 소화시켰던 라디오헤드(Radiohead), 버브(Verve), 트래비스(Travis), 콜드플레이(Coldplay) 등의 잔향들이 앨범의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다.
물론 제임스 월시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팀 버클리(Tim Buckley)와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부자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하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시절 제프 버클리의 음악을 들으며 곡을 썼고, 실전 무대에 첫 발을 내딛을 무렵 그룹명을 팀 버클리의 1970년 작품 <Starsailor>에서 인용했다는 사실만 봐도 대번 증명된다.
하지만 1990년대 영국 전역을 몸살나게 했던 브릿 팝의 열기를 동시대의 젊은이가 한 발짝 비켜서서 바라보고만 있다고는 아무리 믿으려 노력해도 믿을 수가 없다. 버클리 부자에게서 물려받은 싱어 송 라이팅과 포크의 감수성 속에는 분명 브릿 팝의 화려한 색깔들이 물들여져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나서기 좋아하는 영국 언론에서 놓칠 리 없었다. 지난해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제임스 월시, 베이시스트 제임스 스텔폭스(James Stelfox), 드러머 벤 번(Benn Byrne), 그리고 키보디스트 베리 웨스트헤드(Barry Westhead) 등의 라인업으로 구축된 스타세일러가 올해 2월 첫 싱글 'Fever'를 발표했을 때 음악 전문지 <New Musical Express>(이하 NME)는'Next Coldplay'라 칭하며 극찬했다.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들의 입맛도 채 물어보기 전에 미디어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것이다.
<NME>를 위시한 영국 음악 잡지들의 호평에 힘입어 밴드의 싱글 'Fever'는 영국 싱글 차트 18위로, 데뷔작은 앨범 차트 2위에 랭크되는 쾌거를 일궈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런던에서 열린 '큐(Q) 음악 시상식'에서 그들은 스트로크스(The Strokes) 같은 쟁쟁한 그룹을 물리치고 '최우수 신인 밴드'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불과 단 1년 사이에 이뤄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퀵 서비스로 진행된 스타세일러의 성공 스토리는 얼마나 많은 영국인들이 제 2의 오아시스, 제 2의 라디오헤드에 목말라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것은 또한 밴드의 음악이 브릿 팝의 전통적인 계보에 매우 충실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차분한 오르간이 주도하는 사운드는 라디오헤드의 애절함, 콜드플레이의 우울함과 트래비스의 친숙함 등 브릿 팝의 주요 느낌표를 찍게 만든다. 'Poor misguided fool', 'Fever', 'Good souls'등의 트랙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브릿 팝의 범주, 나아가 버클리가(家)의 테두리에서도 스타세일러만의 빛나는 강점들이 있다. 스무 살 나이의 목소리에서 울려 퍼지는 음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제임스 월시의 보컬은 버브(The Verve)의 리처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를 뛰어 넘어 그만의 'Bitter Sweet Symphony'를 완성하고 있다. 'Lullaby'등에서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호소력 짙은 월시의 보이스는 애절하고 가슴아프다.
절대 오버하지 않고 필요한 선율과 리듬만을 토해내는 검소한 멜로디 록 사운드도 일품이다. 'She just Wept', 'Talk her down'등에서 구식 오르간, 소박한 어쿠스틱, 그리고 그 뒤를 무표정하게 따르는 베이스와 드럼은 어떤 파트하나 앞서나가지 않고, 절제된 연주를 하고 있다. 비록 지글거리는 기타 디스토션도, 쿵쿵거리는 드러밍도, 질주하는 베이스 라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파장은 볼륨을 높였을 때보다 더욱 진하게 남는다.
여기에는 제임스 월시의 탁월한 송라이팅 능력이 지대한 작용을 했다.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곡들을 주조해내면서도, 그 안에서 각기 다른 이미지와 감정을 표현해내는 그의 작곡 방식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멀게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수 십 년간 캐리어가 쌓인 프로 작곡가처럼 능수 능란하다.
스타세일러의 미래는 밝다. 그것은 단지 브릿 팝의 부활을 위한 영국 언론의 집중 조명 때문만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또래 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임스 월시와 친구들이 품고 있는 음악에 대한 집중도는 브릿 팝을 뛰어넘어 전세계를 진동시킬 비장의 무기들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수록곡-
1. Tie Up My Hands (Starsailor) - 5:46
2. Poor Misguided Fool (Starsailor) - 3:51
3. Alcoholic (Starsailor) - 2:56
4. Lullaby (Starsailor) - 4:13
5. Way to Fall (Starsailor) - 4:29
6. Fever (Starsailor) - 4:03
7. She Just Wept (Starsailor) - 4:12
8. Talk Her Down (Starsailor) - 4:11
9. Love Is Here (Starsailor) - 4:41
10. Good Souls (Starsailor) - 4:53
11. Coming Down (Starsailor) -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