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인터뷰 내용들을 보면 이제 희대의 트러블 메이커인 갤러거 형제도 어느 정도 '성숙 모드'로 안착한 듯 보인다. 대외적 행동이야 말썽꾼의 모습 그대로지만, 적어도 음악 논쟁에 있어서 만큼은 과거완 확연히 달라져 곧잘 어른스러운 언급을 하곤 한다. 타 그룹의 음악성을 칭찬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이다.(예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성공은 맛볼 대로 맛본 만큼 이제는 패밀리 비즈니스에 충실할 때라는 걸 두 사람 모두 절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전작의 실패도 쓴 약이 되었을 테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말한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발전이 없다고. 만약 당신이 진보를 원한다면 가서 라디오헤드나 들어라. 허나 진정한 삶의 호흡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의 쇼를 봐라. 우리는 자신을 믿는다. 1994년에도 우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우리는 절대로 사기꾼들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오아시스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고독한 예술가가 그려낸 고뇌의 산물이 아니다. 밴드의 음악 세계는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 산수화'와도 같다. 생의 굴곡을 가감 없이 묘사할 줄 아는 골수 로큰롤 분자들이라고나 할까. 오아시스표 로큰롤 미학의 음핵(音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듣는다면 이번 5집은 매우 반갑다. 활기 만점 리듬과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재능이 곳곳에서 광채를 터뜨린다. 사이키델릭 로큰롤 스타일의 첫 곡 'The Hindu times', 미드 템포의 행진곡 풍으로 초반부를 열어 제치는 'Force of nature', 데뷔 시절을 연상케 하는 'Hung in a bad place', 영국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발라드 'Stop crying your heart out', 어쿠스틱 기타와 탬버린의 조화가 발군인 'Songbird', 동생 리암이 재주를 부린 'Better man', 1960년대 사이키델리아의 DNA를 고스란히 이식한 'A quick deep' 등에서 확인된다.
불화를 딛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던 당시 형제의 관계가 암시하듯 한층 유연하고 폭 넓은 음악적 그릇을 산파해냈다고 보면 정확하다. 사운드는 깊어졌고 연주하모니는 일취월장 했으며 결코 무작정 저돌맹진(豬突猛進)하는 법이 없다. 또한 리암이 무려 세 곡, 베이시스트 앤디 벨(Andy Bell)과 기타리스트 젬 아처(Gem Archer)가 각각 한 곡을 쓴 것이 증명하듯, 그룹이 서서히 평등 공동체로 화(化)하는 도상(途上) 위에 있다는 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요소이다.
허나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이후 최고작이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에도 불구, 그다지 큰 성과를 일궈내진 못했다. 영국 차트 정상을 첫 주만에 꿰찼지만 얼마 못 버티고 이내 사라져버렸던 것. 모두 대중들이 오아시스의 음악 패턴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까닭이다. 전곡에서 비틀스의 향취가 과도히 풍기는 것도 이제는 강점 아닌 아킬레스건일 뿐이다.
따라서 앨범에서 들려준 성장 버전을 바탕으로 차기작에서는 단호한 음악적 처방전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고집이 쇠심줄임은 인정하지만 매번 동일한 문법으로 승부하는 것은 무리수를 넘어 악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악 신은 냉정하고 때론 잔혹하다.
-수록곡-
1. The Hindu Times
2. Force Of Nature
3. Hung In A Bad Place
4. Stop Crying Your Heart Out
5. Songbird
6. Little by Little
7. A Quick Peep
8. (Probably) All In The Mind
9. She Is Love
10. Born On A Different Cloud
11. Better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