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더니 이번엔 '별'이 떴다.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으로 치부하면 주의를 기울일 리 없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차례차례 대중들에게 선을 보이고 있는 이 신인들 뒤에는 박진영이라는 이름 높은 제작자가 있다. 일명 'JYP 사단의 가요계 공습'이다.
그렇기에 비의 뒤를 이은 별에게서 그녀만의 독특한 음악색깔을 기대한다는 건 애당초 무리다. 아마도 겨울 분위기를 제법 타고나서 다음 주자에게 무사히 인기 바통을 넘기는 것이 별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생각된다. 12월이 들어간 앨범 제목부터가 아무래도 미심쩍다.
뜨는 신인에게 어울릴 법한 풋풋한 사연도 있긴 하다. 2000년 박진영의 팬 미팅에 장기자랑을 해보려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결국 발탁된 데뷔 동기는 일단 씩씩하다. 타이들 곡 '12월 32일'은 처음 눈물 흘리며 불렀을 때의 애절한 감정을 살리기 위해 데모 테이프용 녹음을 그대로 음반에 실었다. 학창 시절엔 창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별의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있다. 그렇다고 그녀를 선뜻 칭찬하기는 망설여진다. 노래 부르는 본인보다 제작자의 이름이 먼저 눈에 띄는 가수는 별로 매력이 없는 법이다.
마이더스 터치라는 프로듀서의 손을 탔으니 음반의 내용도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슬픈 발라드와 발랄한 댄스 음악이 공존한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꾸며졌다. '12월 32일' 말고도 '별의 자리', '떠나..지마' 등 듣기 좋은 노래가 많다. “신인답지 않은 완성도 높은 앨범”이란 비겁한 발언은 바로 이럴 때 쓰이는 말이다. 음반은 정확히 JYP 사단의 별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물만을 담고 있다.
듣긴 좋게 꾸민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게 전부다. 귀를 단숨에 끌어당기고 마음을 한번에 후려치는 노래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고 그렇다. 남들과 똑같은 분위기의 발라드와 식상한 댄스 리듬은 소폭 성공을 위한 안전장치밖에 못된다.
진정으로 인정받는 일류 가수가 되고 싶다면 누구나 보여주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는 지양하는 게 좋다고 생각된다. 비가 함께 불러 끈끈한 동지애를 과시한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같은 곡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장면인지라 신선하지 않다.
수려한 외모와 쓸만한 재능을 겸비한 채 유능한 제작자의 지원을 등에 업는다는 건 신인이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다. 거기서는 한번만 도약하면 바로 정상이다. 비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위험은 그때부터다. 쉽게 뜰수록 인기를 지키기 어렵고, 대형 제작사와 유명 프로듀서에 가린 신출내기라면 더욱 그렇다. 일시적 성공에만 도취된다면 달력에서 12월 32일이 없듯, 무대에서도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수록곡-
1. 12월 32일
2. 왜 모르니
3. 별의 자리
4. 여기까진거죠
5. 떠나..지마
6. 바보같이
7. 얼마나 사랑하는지
8. 마음과 다른 말
9. 그가 멀어질 때
10. 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