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수확이 달기만 할까. 이미 완성된 앨범을 6개월 만에 만나는 상황 앞에서 늦게라도 만나게 되었다는 반가움보다 왜 이제야 왔냐는 원망이 앞선다. 그 원망은 사실, 최소한의 장유유서의 질서조차 무시되는 치열한 아귀다툼의 현장에 대한 씁쓸함이다. 1997년의 5집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장필순의 새 앨범, 6집 <Soony 6>는 가수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제작자 등 관계자의 입김이 아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절감하게 한다.
슬퍼서 아름답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절박하고 애처로워서 더욱 빛난다는 것 또한 거짓이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고통스럽다 해도, 구석구석 배어있는 속앓이는 눈물겨워서 더욱 아름답다. 누가 록을 저항의 음악이라 했던가. 아니다. 록은 한없이 여리고 아프기만 한 음악이다. 장필순이 6집을 통해 만든 처연한 록(일명 'Soony Rock')은 록의 일반적인 의미를 거스르며 투명한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5집의 '첫사랑'과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는 지금 생각해 보면 신선한 청량제였다. 학창시절의 첫사랑을 수줍게 고백하던 순수한 어른 장필순은 '나의 게으름으로 / 말라 죽은 앙상한 가지로 / 버려졌던 벤자민', '나의 뱃살을 물리치기 위해 / 들여놓은 저기 빛나는 런닝머신('고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는 잔인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나는 하루종일 먹고 또 먹었죠 / 돼지처럼(5집의 'TV, 벌레, 돼지')'는 그래도 애교(?)였던 셈이다. 가사는 우울했어도 노래만은 싱싱하던 지난 시간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30대를 넘긴 대개의 가수가 그렇듯 가사의 소재로 회상을 활용하지만 장필순에게 있어 이를 추억하며 웃음짓는 것은('동창') 잠시다. '눈물을 글썽이며 / 서로 안부를 묻고('동창')' 돌아온 감동의 동창회였지만 곧, 자조를 섞어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 하지만 그렇게 난 그렇게 잊고 있었어 /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지울 수 있을까('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하는 무덤덤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두 곡 사이의 촉간은 그렇게나 길었던 것일까.
부클릿은 꾸물꾸물한 흑백 일색이고 그나마 색감을 담아도 쪼글쪼글한 마른 홍고추 사진이다. 안 그래도 쓸쓸한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는 납량특집 씨리즈의 효과음 같다. 절박한 '모래 언덕'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오아시스를 찾았지만 그건 '신기루'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찾은 '햇빛'조차 찬란하지 않다.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가사에서부터 부클릿, 노래 제목과 구성까지 끝없이 음울(陰鬱)한 <Soony 6>은 결국 세 명의 작곡가 윤영배, 조동익, 장필순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Soony Rock'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하나되어 똑같이 구슬프게 뒤엉켜 있다.
이별이나 실연, 물리적인 고통보다 괴로운 순간은 누구와도 묶이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스스로를 발견할 때다. 이만큼 슬프고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이는 어쩌면, 예정보다 너무 늦게 돌아온 상황과 노래마다 배어있는 자의식이 맞물려 더욱 절절한지도 모른다. 5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성스런 앨범인데도 적당한 시기, 적당한 자리를 못 찾았다는 사실은 장필순의 슬픈 6집을 듣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수록곡-
1. 헬리콥터
2. 고백
3. Soony Rock
4. 10년이 된 지금
5. 흔들리는대로
6. 동창
7.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8. 모래 언덕
9. 신기루
10. 햇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