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두고도 대세가 된 K팝에 우쭐대지만, 가브리엘과 같은 경우를 만날 때면 그것이 사뭇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초 열렸던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알앤비 노래와 퍼포먼스를 동시 수상했던 켈라니나 이즘이 작년 올해의 해외 앨범으로 선정한 바 있는 < Baby >의 주인공 디종 등 알앤비 신의 떠오르는 샛별과 작업했던 그는 영국의 삼인조 걸 그룹 플로의 데뷔 앨범 < Access All Areas >에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고, 이 작품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프로그레시브 알앤비 음반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며 보다 확실한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듀서로서 단 첫 번째 날개, 자국에서의 욕심도 생길 법했지만 그의 눈은 다름 아닌 K팝을 향해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부터 한국인 친구를 곁에 둔 까닭에 이미 우리 가요와 가까웠다는 가브리엘은 지난 2월 열린 한국힙합어워즈에서 올해의 알앤비 음반을 가져간 크러쉬의 < Fang >을 작업했다. 노래 부문까지 2관왕에 올랐는데, 수상한 ‘Up all nite’도 그의 손에서 탄생한 곡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더 많은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고마운 열정은 집까지 얻어 눌러앉기에 이르렀다. 우리 눈으로 보는 우리네 성과를 지나 밖에서 바라보는 K팝을 논했던 값진 시간. 그날의 대화를 전한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물론 가시적 성과가 전부는 아니겠으나 그래미 어워드 후보 지명과 크러쉬 앨범의 수상 실적 및 호평 등 수확이 분명했는데.
일찍이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서 크러쉬는 알고 있었다. 한 번쯤은 꼭 같이 작업해 보고 싶었기에 일부러 SNS를 만들어 연락을 시도했다. 함께한 과정도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 모든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행복할 뿐이다. 플로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래미 어워드에 내가 만든 곡이 후보로 오른다는 건 음악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명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식을 처음 듣고는 꿈꾸는 줄 알았다.
켈라니, 디종처럼 현재 영미권 알앤비 신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과 작업을 했다. 플로까지 포함해 이렇듯 열매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살면서 K팝에 투신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K팝을 향한 오랜 흠모가 있었다. 음악 인재들이 모이는 특수한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그중에 한국인 친구가 몇 명 있었다. 당시 그들로부터 ‘
좋은 날’이 담겨있는 아이유의 < Real >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다. 팝이긴 한데 무언가 독특했다. 그 기억이 꽤 강렬해서 언젠가는 한국에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있다가 2016년 시아준수의 ‘Break my heart’를 통해 소망을 이뤘다. 그 뒤로 더욱 흥미가 생겨 SM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여러 회사에 곡도 보내고, 인디 알앤비 뮤지션과 연도 점차 닿기 시작했다.
영등포를 배경으로 한 싱글 ‘YDP’를 내기도 하고, 지난 설 연휴에는 단독 콘서트를 여는 등 가수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중에게는 앞에서 말한 프로듀서로서의 결과가 더 크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부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사이에서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계속해서 바뀌는 듯하다. 가끔은 프로듀서가 되어 음악 뒤에 숨고 싶을 때가 있고, 그러다가 한 번은 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K팝은 경쟁하는 구도가 많다 보니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채찍질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동안 그러다가 나를 위한 곡을 만들면 산뜻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 좋고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테면 뇌의 완전히 다른 영역을 사용하는 것 같다. 비교적 자유로운 팝 시장과 경계선이 명확한 K팝 모두 매력이 있다. 그 사이에서 내가 나를 규정하고 있진 않다.
언급한 ‘K팝의 경계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K팝은 체계가 명확한 느낌이다. 원하는 방향이 분명하고, 그곳에는 어떤 규율이 있는 것만 같고 우리같이 만들어주는 사람은 거기에 끝없이 맞춰야 할 때가 많다. 물론 그 속에서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업자로서 실력을 늘리기에는 꽤 효과적이다.
가수 가브리엘의 음악, 특히 최근 발매한 ‘YDP’를 듣고 곧바로 니요와 어셔가 떠올랐다. 영향받은 보컬리스트가 분명해 보인다.
정확하게 보셨다. 니요와 어셔를 뺄 수 없다. 열두 살쯤 그의 첫 앨범을 듣고 소위 말해 뻑이 갔다. 크리스 브라운에게 받은 영향도 분명하다. 그러나 보컬 측면을 떠나 음악적 방향성을 만들어준 건 재즈 쪽이 더 가깝다. 아무래도 음악 학교에 다녔기 때문인 듯하다. 자코 파스토리우스나 웨더 리포트, 팻 매스니, 빌 에반스가 떠오른다. 아, 이 모든 걸 통틀어 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스티비 원더라 하겠다.

영미권과 한국 간의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문화적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영국과 미국은 구체적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그때마다의 분위기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애초 생각했던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도 우리끼리 만족하면 그만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생각했던 기획이 있다면 끝날 땐 그것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 회사나 음악인들에게 피드백을 주면 거의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공동의 지향점으로 가는 것이니 그렇다. 각자의 장단점이 분명하다. K팝은 확실히 생산적이다.
K팝 시장의 송 캠프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플로의 앨범을 만들 때도 영국에서 송 캠프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다만 K팝과 결이 다르다. ‘한국적’ 송 캠프라고 할까. 수많은 프로듀서가 모인 가운데 왁자지껄하기보다는 오히려 촘촘히 짜인 체계 속에서 짧고 명확하게 자기 할 일 하고 해산하는 느낌이었다. 영국은 오히려 제집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구조로 진행될 때가 많다. 마음은 편한데, 지분 구조라든지 현실적인 문제에서 복잡해질 때가 종종 있다.
아이유의 음악을 듣고 충격받던 가브리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K팝을 비교하면 상상할 수도 없던 저명한 제작자들이 우리 음악과 함께하고 있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K팝이 갖는 경쟁력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같이하고 싶어 하는 걸까.
집에서 혼자 만들고 찍어내는 미니멀 음악도 물론 좋지만, 제작자로서는 내가 쓴 노래가 이왕이면 더 큰 규모의 바다에서 헤엄치길 바라는 당연한 마음이 있다. 뮤직비디오는 물론, 춤과 같은 무대 측면까지 화려한 비주얼로 내 음악의 몸집을 키워주는 시장은 사실상 K팝이 최고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K팝 시스템에 피로감이 들 때가 있을 텐데.
이곳에서 일을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여러 군데 곡을 던지면 다시 연락이 오기까지 2~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때가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이 시장으로 몰리면 그렇겠냐마는 당장의 결과를 알 수 없으니 기다리다 지치기도 한다. 그러니 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아티스트 중 작업해 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얼마 전 들은 주혜린의 음색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또 작년 크러쉬 음반에서 피처링으로 만났던 수민과 음악을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다.
마지막은 공식 질문이다. 지금의 가브리엘을 만든 인생 음악을 알려달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셔의 <
Confessions >다. 알앤비 음악을 향한 사랑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곡으로 하나 고르자면 나의 노래 중 ‘Unbeliever’를 선택하고 싶다. 크러쉬가 직접 언급해 주면서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기가 수월해졌다. 또 유독 한국 분들이 많이 반응해 주셨다. 한때 제프 버넷을 좋아하셨던 것처럼 듣기 편한 매력이 담긴 노래라고 생각한다.
진행: 신동규, 한성현, 박승민
정리: 신동규
사진: 박승민
통역: 살폿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