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독점한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와 흔들림 없는 불편한 차트가 지배하며 개살구의 빛이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럼에도 결산은 매년 각축의 장을 펼쳤고 상대적 평가와 절대적 가치 사이에서 이즘만의 시각을 더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연말이 되면 각종 음원 스트리밍 업체에서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들었나 마케팅하지만 우리는 ‘열심히’라는 단어에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정과 관심 없이 관성적으로 일상의 BGM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재생 버튼을 누른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국내와 달리 해외 작품은 직접 찾아 듣지 않는 이상 저변을 넓히기 쉽지 않다. 이 리스트를 통해 한 해의 음악 대신 자신을 점검하는 것 또한 색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임동엽)
클립스(Clipse) < Let God Sort Em Out >
16년의 허물을 부수고 다시 조우한 듀오의 복귀는 시의적절하다. 힙합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타 장르에 기생하고 뒤섞이는 시대에 정통성을 수호하는 앨범이다. 신에서 더욱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푸샤 티 특유의 코크 랩(Coke Rap)과, 개신교에 귀의한 탓에 긴 공백기를 거쳤음에도 두드러지는 맬리스의 랩의 조화는 2006년 명반 < Hell Hath No Fury >에 버금간다. 그에 더해 클립스와는 필수 불가결한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의 비트까지. 진정한 재결합이 의미하는 것은 곧 힙합 클래식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와 코카인. 공존할 수 없는 두 소재를 한 장의 음반으로 녹여내는 데에는 온갖 비유와 고도의 스토리텔링이 한몫한다. 화려한 거리의 삶을 투영하는 동시에 반성적이고 내면적으로 더욱 성숙해진 형제의 이야기는 담백하고 진솔하다. 거짓 없는 가사, 조균한 비트, 단단한 래핑이 결국 수작의 주조로 이어졌다. 앨범을 발매하는 것만으로 고마운 아티스트가 몇 있다. 클립스가 그렇다. 묵직한 선물 보따리를 기분 좋게 열어보기만 하면 된다. (장대휘)
데프톤스(Deftones) < Private Music >
“언제 적 데프톤스야, 아직도 음악해?” 그렇다.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던 데뷔작 < Adrenaline >이 서른 살을 맞이한 올해, < Private Music >은 다섯 해를 넘지 않는 신보 주기로 달려온 중견 밴드의 열 번째 정규작이다. “갑자기 왜 데프톤스인데?” 그러게 말이다. 나도 묻고 싶다. 놀랍게도 이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오늘날 미국의 1-20대, 이른바 MZ 세대가 자신의 가려움을 해소할 대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엇비슷한 힙합과 팝 록 중심의 익숙한 소리가 지배한 근년의 지겨움도 한몫했으니 데프톤스 뿐만 아니라 고스트나 슬립 토큰과 같은 과격한 소리와 그림체가 부름을 받은 한 해였다.
현상의 발화는 온전한 음악성을 기초로 한다. 데프톤스는 여전히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겨냈던 < Around The Fur >의 얼터너티브 사운드와 본격적으로 타 장르와의 외도를 시도한 차기작 < White Pony >로 기억된다. 이후 선보인 작품은 뉴메탈, 하드코어 펑크 신의 후퇴기와 급격한 스타일 변화에 맞물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초기작만큼은 이 계통의 교본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귀환은 세기말을 수놓은 시작의 격동을 상기한다. 사회적 요소가 가득했던 당대의 고함은 당장의 젊은 운동성을 깨웠고, 알다가도 모를 숏폼의 경계에서 바이럴되며 연차를 지워냈다. 기나긴 생명력도 기준이라면, 데프톤스는 자격이 있다. (신동규)
디종(Dijon) < Baby >
익숙함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리듬 앤 블루스의 거대한 뿌리를 재해석하는 수많은 방식 가운데 디종은 기존의 문법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변칙적인 리듬 배치와 1980년대의 질감 처리에서는 프린스의 기운을, 부드럽게 감도는 멜로디에는 디안젤로의 영혼을 환기한 그는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정점에 이르며 해당 장르의 미학적 도약을 선언한다. 저스틴 비버의 < Swag > 제작진에 이름을 올리고 본인의 작업물로 예술성까지 일궈낸 뮤지션에게 음악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필연이었다.
갖가지 악기 소스를 헤집고 분해하는 과정에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불변의 가치다. 아내를 향해 격정적인 애정을 쏟는 ‘Another baby!’와 자신의 결핍이 자식에게 얽힐 것을 우려하며 흔들리는 ‘Rewind’ 이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Kindalove’로의 정서적 흐름은 실험적인 사운드의 원동력이다. 요동치는 감정선이 파편화된 소리에 부딪히고 극적으로 결합하는 현장의 진동은 결국 내면의 균열과 복원을 반복하는 우리의 삶과 맞닿는다. 음악적 완성도와 서사의 밀도를 갖춘 < Baby >에는 새 시대의 새 소울이 태동한다. (박시훈)
FKA 트위그스(FKA twigs) < Eusexua >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야만 표현할 수 있는 황홀경. < Eusexua >는 과연 그렇다. 이 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열한 트랙이면 충분하다. FKA 트위그스를 지탱하는 삶의 철학은 테크노가 울려 퍼지는 플로어로 형상화되었고 그 속에서는 자신마저 완벽한 타자가 된 듯 철저하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다. 작년 형광 초록 레이저 아래 대규모로 개최되었던 광란의 레이브를 즐긴 자들이 이런 파티를 마다할 리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올해 많은 앨범이 제2의 < Brat >이 되고 싶어 했지만 정작 그 자리는 최초의 유포리아를 선사한 자가 차지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양과 질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뛰어넘을 수 없다. 클럽의 인공조명은 여전히 FKA 트위그스만이 만들 수 있는 색을 담고 어느 광원보다 강렬하게 발광한다. 빛을 피해 눈을 감고 만난 또 다른 무아지경과 후광으로 느껴지는 명순응까지, 한 해에 세 번 펼쳐진 낙원은 모두 유섹슈아를 경험케 했다. 시류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희석되지 않는 무언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저 선험적 영역일 뿐, ‘Eusexua’는 체득으로만 뜻을 알 수 있는 고유명사다. (이재훈)
헤일리 윌리엄스(Hayley Williams) < Ego Death At A Bachelorette Party >
치유는 상처를 대면하는 괴로운 과정을 수반한다. 밴드 파라모어의 보컬 헤일리 윌리엄스는 솔로 3집 < Ego Death At A Bachelorette Party >를 통해 그 고통을 기꺼이 무릅쓰며 단호한 칼질로 자신을 괴롭혀온 염증을 도려냈다. 곪은 피부를 가르는 일은 날카로운 노랫말의 몫이다.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연인과의 이별, 우울, 팀의 프론트 우먼으로서 받는 시선 등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은 곧 현대인의 인간관계, 여성으로서의 삶, 업계의 부조리와 같은 작금의 거대 담론을 자연스레 겨냥한다.
20곡에 달하는 발화가 긴 넋두리에 그치지 않게 하는 힘은 오롯이 음악 그 자체에 있다. 요동치는 감정 위에서도 선율의 힘만은 변함없이 굳건하며 무기력한 듯 의지를 품은 목소리는 처절한 비명이 뒤덮는 ‘Ice in my oj’에서 다시 날아오르려는 ‘Parachute’까지의 고독한 사투를 이 악물고 토해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전(自傳)이 예술성으로의 손쉬운 탈출구로 소비되기도 하는 요즘, 헤일리 윌리엄스의 자기 해부는 그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시켰다. 살갗 아래의 자아를 적나라하게 파헤칠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박수석)
케이팝 데몬 헌터스 캐스트(KPop Demon Hunters Cast)
< KPop Demon Hunters Soundtrack >
미디어의 힘이 컸다. 영화의 삽입곡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관계는 불가분이지만 대단히 토속적인 배경과 캐릭터 묘사가 없었다면 사운드트랙 최초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 내 4곡 진입이라는 기록 달성은 힘들었을 테다. 친근한 한국인의 밥상을 보여줬기에 ‘How it’s done’의 카리스마는 강한 대비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고 ‘Your idol’의 매혹은 저승사자 콘셉트가 있어서 더 위협적이었다. ‘아기상어’와 ‘Apt.’를 이어 세계 각지 유아층까지 사로잡았으니, 정말 올해의 인물은 작품을 지휘한 매기 강일지도 모른다.
음악의 공도 그러나 만만치 않다. 아찔한 고음으로 2020년대의 ‘Let it go’가 된 헌트릭스의 ‘Golden’과 각종 청량 보이그룹에 원전을 둔 사자보이즈의 ‘Soda pop’ 등 < 케데헌 >의 상징적 순간은 분명 음악적 고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유의 ‘무해함’을 끄집어내 모호한 개념에 머물렀던 K팝에 비로소 장르적 성질을 부여한 것은 물론, 현직 아이돌 트와이스 외에도 멜로망스의 발라드와 1970년대 죠커스의 포크송을 수록해 더 넓은 차원의 ‘가요’까지 알린 올해의 진정한 올라운더. 외부의 시선과 자본으로 만든 작품이 'K' 안에 숨은 ‘팝’을 발굴했다. (한성현)
릴리 알렌(Lily Allen) < West End Girl >
진정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심연 속 가장 연약한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다. 물론 배우자 데이비드 하버와의 이혼, 그 처절하고 참담한 과정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지워버릴 만큼의 위태로웠던 사랑이야말로 그녀의 완벽한 취약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의 밑바닥까지 헤집고 들어간 순간에 창작의 힘이 가장 선명해지는 법. 그런 의미에서 < West End Girl >은 상대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하는 폭로문이 아니라 릴리 알렌의 일기장에 더 가깝다.
그래서 큰 주제인 남편의 오픈 릴레이션십 제안과 외도, 작게는 적나라한 성인용품 리스트와 성 중독 등 높은 수위의 가사는 그저 자극적 향신료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자기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Nonmonogamummy’) 최종 지향점을 포착했을 때 비로소 앨범은 단단한 회복의 힘을 띠게 된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도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금 일어나 있는 것처럼. (임선희)
맥 밀러(Mac Miller) < Balloonerism >
기약을 남기고픈 마지막도 있다. 7년 동안 멈춘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생생한 위로를 전했던 래퍼는 < Balloonerism >을 끝으로 하늘 높이 올라 점이 된 풍선처럼 멀어질 뿐 사라지지 않는 이별이 되었다. 그의 굵직한 음악과 짧게만 느껴지는 생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스물두 살 맥 밀러가 말하는 허무와 죽음, 한편 삶을 희망하는 목소리는 막막한 시간을 견뎌낸 것 같기도, 끝내 등져버린 것 같기도 한 묘한 감정을 남긴다. ‘The best is yet to come.’ ‘Rick’s piano’의 암시 이후 머지않아 < Go:od AM >의 극복을 맞이한 역사처럼 그럼에도 그의 삶은 사랑을 당부한다.
고뇌가 짙어질수록 진해지는 표현이 증언하는 그의 2014년. 아득한 고통만큼 몽환적인 사운드 속 재즈와 소울을 아우르는 서정성이나 다른 자아 딜루저널 토마스(Delusional Thomas)와의 교감, 시저의 소울에 사이키델릭을 조화시키는 연출 모두 동시기 < Faces >에 버금가는 높은 감도로 이어졌다. 유산의 수단화로 얼룩진 다른 사후작과 궤가 다르다. 생전 앨범에 보인 애정, 아티스트를 존중하는 가족의 소극적 개입에 팬들의 이해가 맞물리며 세상은 맥 밀러의 완전한 작별 인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뻗고 있던 손을 이제야 잡았음에도, 그는 늘 그랬듯 우리를 끌어올린다. (남강민)
노리쉬드 바이 타임(Nourished By Time) < The Passionate Ones >
노리쉬드 바이 타임 혹은 마커스 브라운. 올해 선정된 아티스트 중에서도 단연 생경할 이 이름은 철저한 가내수공업에 뿌리를 둔다. 볼티모어와 LA 코리아타운을 횡단하며 새긴 삶의 궤적을 그대로 바이닐에 찍어낸 듯한 생생함은 팬데믹 시기 음악을 시작한 그를 일약 주목으로 이끌었다. XL 레코딩스와의 계약 후 내놓은 정규 2집 < The Passionate Ones >는 대형 레이블의 지원이 DIY 정신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예시다. 빈티지한 질감의 신시사이저, 특유의 먹먹함이 매력적인 드럼, 포스트 펑크가 스며든 기타는 한데 모여 요동치며 기성 장르의 폭을 벗어난 파장을 만든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인 사랑의 온도가 더없이 따뜻하다. 적에게 칼끝을 겨누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노리쉬드 바이 타임은 성찰자의 자세로 모두를 포용한다. 자신부터 고단한 삶을 음악으로 승화한 ‘보통 사람’이기에 앨범이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가 뜨거운 진정성을 지닌 채 가닿는 것이다. 그 형식이 격렬하게 랩을 내뱉는 ‘Baby baby’든 잔향 가득한 인디 록의 ‘Tossed away’든 결국 전달하는 말은 똑같다. ‘시간 속에서 무르익으며 서로를 감싸안으라!’ 20세기의 꼬리를 잡은 채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노래하는 목소리가 애타게 외친다. (박승민)
로살리아(Rosalía) < Lux >
로살리아라는 용어가 있다. 바로크-고전 시대에 주로 쓰던 작곡 기법으로 반복 상행 선율을 일컫는다. 이름부터 낯선 오케스트럴 팝을 활용하긴 했지만 앨범의 주요 수법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생소한 이 표현에 진부함이라는 단점을 걷어내고 극적으로 상승하는 긍정 효과에 집중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플라멩코의 숨결이 깃든 2018년 소포모어 < El Mal Querer >와 K팝에도 영향을 끼친 2022년 3집 < Motomami >에 이어 이번 11월에 나온 네 번째 신작까지, 한 음 한 음 단계적으로 성장하며 클래식 음악 장치를 몸소 실천한 그를 빗댄 것이다. 연말에 나온 탓에 경향을 읽긴 힘들어도 완성도 측면에서는 단연 올해의 히로인이라 할 만하다.
유행, 현상, 사회적 맥락으로 1년을 돌아보면서도 우리는 다시금 다음 해를 기약하고 기대하며 기다린다. ‘클래식힙’이라는 소국적 트렌드 속 독과점에 가까웠던 팝 시장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으나 대중음악의 미학이라는 근본 가치는 언제나 지켜왔다. 적든 많든 매년 그에 응당한 작품과 아티스트는 거짓말처럼 나타났고, ‘어떻게 발매하자마자 단숨에 평단의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그는 오롯이 음악으로 답했다. 어려움과 난해함을 완벽에 가까운 고품질 만듦새로 빚어내어 세상을 향해 빛나는 역량을 비춘다. 정체보다 나은 후퇴, 후퇴보다 나은 전진, 그게 로살리아다.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