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Kiss All The Time. Disco, Occasionally.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2026

by 이재훈

2026.03.30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격언은 해리 스타일스 같은 슈퍼스타에게도 해당된다. 출가의 동기야 충분했다. 투어 중 맞닥뜨린 팬데믹은 투어와 신보 발매로 점철된 삶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고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다 준 < Harry’s House >는 쟁쟁했던 후보 목록과 비교되며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가 되었다. 작업 기간 동안 고향인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머물렀던 것처럼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일종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음악적으로도 탈피하려 애썼지만 결국 장고 끝에 악수를 두었다.


변화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이전 리드 싱글들을 살펴봐야 한다. 중심을 잡아주는 기타 사이에 어딘가 처량한 감수성을 자아냈던 ‘Lights up’은 거부하기 힘든 익숙함으로 무장한 < Harry Styles >와 < Fine Line >의 기조와 구분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 Harry’s House >의 선공개 곡 ‘As it was‘로 이어진다. 신나는 템포에 어울리지 않는 여린 목소리는 ‘Kiwi’에서의 거친 샤우팅과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옅어진 톤은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포근함과 전체적인 통일감을 형성했다.


낯설었던 첫 만남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풍미가 깊어지던 전작에 비해 < Kiss All The Time. Disco, Occasionally. >는 곱씹어보아도 뚜렷한 감상을 만들지 못한다. 주요 원인은 단조로운 멜로디다. 인트로에서 외로움에 사무치는 피아노와 아카펠라를 겹겹이 쌓는 필살기까지 적절했던 ‘American girls’는 힘이 빠지는 후렴과 인터루드에서, 연달아 나오는 ‘Ready, steady, go!’는 제목만 반복하는 후반부에서 각자의 장점을 무너뜨린다. 떼창 유도 역시 평면적인 선율을 강제한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관람하며 모두 함께 노래하는 광경에서 무대에 올라갈 이유를 다시 찾았다는 설명은 이해할 수 있으나 다소 노골적이다. 하향식 구조의 코러스를 가진 ‘Dance no more’과 평면적인 버스(verse)의 ‘Are you listening yet?’은 따라 부르기도 전에 지치게 만든다.


감정이 메마른 까닭은 본인이 느낀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깨닫지 못한 점에 있다. 중심부를 차지하는 혼란스러운 정서가 뭉뚱그려져 밋밋하게 발현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그를 소환하는 일부 트랙만이 빛난다. ‘Treat people with kindness’의 새로운 버전으로 간주할 수 있는 ‘Aperture’는 해리 스타일스식 저지 클럽을 구현하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한 순간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제 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담는 데에 성공했다. 목적지 없이 헤매다 마지막에서야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달은 ‘Carla's song’이나 ‘Cherry’와 ‘Daylight’의 몇몇 구절이 생각나는 ‘Taste back’ 모두 따스했던 모습으로 회귀해 한결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 이미 쌓은 디스코그래피가 얼마나 탄탄한지 체감하는 동시에 현재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걷어내기 어려워졌다.


세계를 호령한 보이 밴드의 막내에서 록스타가 되고자 한 시절을 지나 어느덧 30대에 들어선 해리 스타일스. 순식간에 지나간 삶에서 멈출 수 있는 시기를 맞이하자 이제서야 사춘기를 겪고 있다. 여러 고민이 채 풀리지 않고 작은 구멍으로 남아 작품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앨범의 제작 계기로 라디오헤드와 엘씨디 사운드시스템의 공연을 언급하듯 틈에서는 공고한 위치를 차지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보인다. 그러나 < Kiss All The Time. Disco, Occasionally. >는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 다가가기보다 오히려 후퇴하는 모양새에 가깝다.


-수록곡-

1. Aperture [추천]

2. American girls 

3. Ready, steady, go!

4. Are you listening yet? 

5. Taste back [추천]

6. The waiting game 

7. Season 2 weight loss [추천]

8. Coming up roses 

9. Pop 

10. Dance no more

11. Paint by numbers 

12. Carla's song [추천]

이재훈(sngov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