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도 여간 집에만 있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나 보다. 옛 레코드를 재생하듯 나른하게 늘어진 관악 사운드와 복고풍 뮤직비디오, 여기에 힘을 잔뜩 뺀 조이의 목소리가 1980년대를 추억하며 맘껏 뛰어놀던 과거를 회상한다. 재치 있는 뮤직비디오와 가사 덕분에 정체된 일상이 조금이나마 유쾌해진다.
다만 크러쉬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아쉽다. 물론 '자나 깨나'와 같이 힙합과 접목한 최신 알앤비(말 그대로 컨템포러리 알앤비다)는 어딜 가나 유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리치 브라이언의 'History'와 비슷한 어레인지나, 1980년대 홍콩 영화를 오마주 하는 조지(Joji)의 영상만큼이나 키치한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아시안 중심 채널인 88라이징(88rising)이 추구하는 음악상과 닮아있다.
크러쉬는 크러쉬다. 그저 '아시안 레거시'의 부흥을 꾀하는 요즈음의 흐름에 단순히 편승하기엔 그간 쌓아온 자아가 너무도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