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출나진 않으나 보편의 공감을 추구하고, 이를 세련된 만능 프로듀싱으로 풀어내는 기리보이와 이번 앨범 타이틀이 꽤 잘 어울린다. 저스트 뮤직 재단의 지원과 그 세를 급격히 불려가는 크루 우주비행(WYBH), 코드 쿤스트와 유라, 헤이즈 등 다양한 초빙 교수들을 불러 설립한 < 100년제전문대학 > 역시 아티스트의 멀티 플레이어적 면모가 자연스레 녹아있다.
전작 < 기계적인 음악 >과 < 공상과학음악 >을 거쳐 팝적이고 현실에 더욱 맞닿은 사운드는 성숙과 공감의 면에서 앞서나간다. 시티팝의 정취를 물씬 담은 ‘도쿄’는 신스 인스트루멘탈을 쌓아나가다 감각적인 기타 리프를 교차하고, 유라(youra)의 쓸쓸한 목소리를 제시하며 트렌드와 개성을 둘 다 잡는다. 의식의 흐름을 재즈적 터치로 풀어내는 ‘레인드랍’, 나른한 보컬과 그에 맞는 보사노바 스타일 기타 리프의 ‘교통정리’도 무던하고 편안한 감상이 가능하다.
기리보이는 불완전하기에 매력적인 캐릭터다. 코드 쿤스트의 비트 위 주목받는 래퍼들과 함께한 단체 곡 ‘아퍼’가 대표적인데, 젊은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포부와 자유로운 영혼을 과시하면서도 ‘내 친구들은 아퍼’라는 노랫말처럼 어딘가 감정적으로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 위더플럭 레코즈의 릴 타치(Lil tachi)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고, 과하다 싶은 노엘에 이어 < 킁 >으로 다시 태어난 씨잼을 배치한 것도 좋은 결정이다.
우주비행 소속 프로듀서 코스믹 보이(Cosmic Boy)의 손길 위 마냥 늘어질 수 없는 일상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우린 왜 힘들까’, ‘난 너의 crush / 난 너의 그레이 / 난 너의 딘딘 / 난 너의 딘’이라 노래하며 본인의 예술관을 풀어놓는 ‘예술’도 같은 맥락에서 공감을 더한다. ‘기타 멘 무사시’ 한요한의 브릿팝 스타일 곡 ‘결말’도 처연한 이별 감정을 무난히 구현한 결과다. ‘찌질 감성’의 안정화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대중음악 프로듀서 중 한명임을 무리 없이 증명한 작품이다. 치열한 고민이나 창작 갈등, 새 아이디어로 번득이진 않아도 다양한 상황과 공간에 두루두루 어울리는 가요 모음집이라는 의미가 있다. < 100년제전문대학 > 커리큘럼만 잘 따라가도 트렌드를 쫓는 덴 어려움이 없겠다.
-수록곡-
1. 도쿄 (Feat. 유라(youra))
2. 아퍼 (Feat. Kid Milli, Lil tachi, 김승민, NO:EL, C Jamm) [추천]
3. 레인드랍
4. 심한말
5. 우린 왜 힘들까 (Feat. Jclef) [추천]
6. 예술
7. 결말 [추천]
8. 교통정리 (Feat. 헤이즈)
9. 1억 / 400 (CD O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