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그의 음악을 관통하던 키워드는 유재하의 적자(嫡子)들이 이루어낸 90년대 가요 감성이었다. 특히 이러한 성향은 2집 < 보고싶었어요 >(2014)에서 정점을 찍었다. 리얼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구현해냈던 풍부한 편곡은 그야말로 '발라드 황금기의 확장판'이었다. 그러나 전작 < Lo9ve3r4s >(2011)가 품은 결핍(흔히 '인디적'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아꼈던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작은 골수팬들에게 익숙한 모던록 기조도 아니고,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안아줘'를 부른 가수로서의 이미지와도 상충한다. 앨범 전반에 드리워진 '체념'의 공기는 그가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신선한 자세다. 불안정한 심리와 자해에 대한 암시를 담은 노랫말이 거친 질감으로 디자인된 사운드를 만나, 사랑의 말로를 예지한다.
코드에 속하지 못하고 밖으로 튀는 기타 하모닉스는 자신의 쓸모에 대해 끊임없이 대답을 요구하는 가사와 잘 어우러진다('Useless'). 구원을 바라며 절규하는 'Plastic'에서는 고요한 가운데 울리는 노이즈부터 폭발하는 후반부까지의 과정이 개연성 있게 이어져 있으며, 공간감 있는 음향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형성하는 'IAN'은 'Plastic'에서의 감정적 분출 그 후의 공허함을 그려낸다. 마지막 트랙 'We will meet again'에 다다르면 귀에 익은 정준일 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면서 한 앨범으로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미디어의 도움 없이 대중예술이 대접받기 힘든 현실에서 정준일이라는 아티스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꽤 무겁고 진지하다. 이번 음반 역시, 의도된 실험이라기보다는 정직한 자기고백에 무게추가 실린다. < Underwater >는 그동안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조금은 낯선 위치에 자리하고 있지만, 네 곡이 하나의 공통분모를 취하며 얻은 통일성에 설득력을 확보한다. 실패의 정서가 이토록 매력적이다.
-수록곡-
1. Useless
2. Plastic (feat. BewhY)
3. IAN
4. We will meet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