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No Reason To Cry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76

by 신현태

2013.08.01

또다시 갈림길(crossroads)에 섰다. 전작 < There's One In Every Crowd >에서의 레게 리듬은 혼란스러웠다. 에릭 클랩튼 자신도 졸작으로 인정하며, 투츠 앤 더 메이털스(Toots And The Maytals)가 답이었어야만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한다. 'I shot the sheriff'의 대박은 시쳇말로 '어쩌다 얻어걸렸다'고까지 언급하지 않았는가. 이때의 상황은 이랬다. 앨범의 세일즈 참패, 패티 보이드와의 어정쩡한 관계, 파렴치할 정도의 변덕, 그리고 술과 마약.

리더였기에 모두를 이끌어야만 했다. 모두 잊고 새로운 '신'의 길을 찾아야하는 시점이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계획도 없었다. 뚜렷한 방향도 잃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었고, 작업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이 시절의 클랩튼은 늘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밴드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반주자의 역할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피터 토시(Peter Tosh), 델라니 앤 보니(Delaney & Bonnie), 리온 러셀(Leon Lussel)과 같은 위대한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그 욕구가 강해졌다.

하여 < No Reason To Cry >는 에릭 클랩튼의 정규 스튜디오 음반 중에서도 객원 보컬리스트의 참여도가 높다. 특히 여성 싱어의 비중이 크다는 점은 작품의 두드러진 점이다. 심지어 'Innocent time'는 디트로이트 출신인 마시 레비(Marcy Levy)의 솔로곡이다. 'Beautiful thing'과 'Carnival', 'Hungry'와 같은 트랙에서도 여성 보컬이 주를 이룬다. (1978년 'If can't have you'로 빌보드 넘버원을 차지한 이본 엘리만(Yvonne Elliman)도 백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독단적인 수록곡이 오히려 차트의 성적이 좋을뿐더러, 공연장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싱글로 발매해 빌보드 24위를 차지한 'Hello old friend'는 그가 남긴 대표적인 컨트리 넘버이며, 오티스 러쉬(Otis Rush)의 고전 'Double trouble'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커버해 녹음했다. 이 곡은 라이브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음악적인 성향 변화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절대적인 요인은 더 밴드(The Band)의 멤버인 피아노 주자 리차드 매뉴얼(Richard Menual)과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했던 릭 단코(Rick Danko)가 작곡한 곡들이었다. 끝없는 투어로 지칠 대로 지친 더 밴드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스튜디오를 내주기까지 하며 클랩튼의 앨범 작업을 도왔다. 이와 동시에 팀의 마무리 정비를 했다. (그들은 이듬해 < The Last Waltz >를 마지막으로 해체한다.) 특히 현재까지도 골든 레파토리로 남아있는 'All our past times'은 단코와 입을 맞추며, 컨트리 록의 진수를 들려준다.

에릭은 밥 딜런의 < Desire >(1976)에서 기타 세션을 맞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딜런이 클랩튼을 위해 써두었던 'Sign language'는 듀엣의 형식으로 녹음되었다. 큰 반향을 이끌지는 못했지만, '거장과 거장의 만남'은 언제나 특별하게 기록된다. 특정한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그저 '함께 노래하자'는 식으로 힘을 뺀 곡이다.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웠던 더 밴드의 기타리스트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식의 트레몰로 기타 플레이를 차용했다.

더 밴드의 영향력이 깊이 새겨진 컨트리 음반이다. 물론 밥 딜런과 더 밴드가 함께한 < The Basement Tapes >(1975)와 같은 명반의 대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에릭 클랩튼의 팬은 물론 밥 딜런과 더 밴드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레코드로 남았다.

“나 자신이 만든 거장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에릭 클랩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그저 밴드의 구성원으로 상황에 맞는 수수한 연주를 하고자 했다. 원하는 바를 그대로 < No Reason To Cry >에서 드러냈다. 화려한 기타 테크닉보다는 편안한 포크 록과 컨트리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자신을 반영할 줄 아는 연주자만이 끝까지 남는다 하지 않던가. 매 작품마다 맹수와 같은 야성의 기백을 드러내기만 했다면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신으로 불리는 남자 에릭 클랩튼이 가지고 있는 '다면의 기타색'은 모든 기타리스트의 '올타임 워너비'인 이유다.

-수록곡-
1. Beautiful thing
2. Carnival
3. Sign language (duet with Bob Dylan) [추천]
4. County jail blues
5. All our past times (duet with Rick Danko) [추천] 
6. Hello old friend [추천]
7. Double trouble [추천]
8. Innocent times (Marcy Levy solo)
9. Hungry
10. Black summer rain
11. Last night

Producer: Rob Fraboni
신현태(rocker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