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의 보고인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디스코그래피에 오점 없는 팝 뮤지션은 드물 것이다. 더욱이 전에 없었던 혁명적 실험,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도전, 이질적 장르 간의 접목을 시도했던 그들과는 달리 '오로지 블루스'라는 에릭 클랩튼만의 음악적 고집에서 보자면 명반 리스트의 구성이라는 '위대한 전람회'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과업이었으리라.
인간은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지난날의 실수를 되새기며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후회에 후회를 반복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대게는 이런 잘못은 무의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서 조종당하기 일쑤다.
이를 음악가의 경우로 대입해보면 어떨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에게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전설로만 알려진 대가들도 이런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에릭 클랩튼에게 < There's One In Every Crowd >는 잊고 싶은,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작품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전작 < 461 Ocean Bouleavard >의 수록곡 'I shot the sheriff'에서 라스타파리안(Rastafarian)의 영혼을 담아냈던 '레게 탐구'는 차트 정상을 차지하게 해준 달콤하고 매력적인 소스였다. 레게와 로큰롤의 '소박한 만남'에서 이루어진 작업은 대성공을 이루었고, 이에 힘입어 급급하게 연이은 성공을 위한 녹음에 들어간다.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작위적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며 성향을 그대로 이어 내려는 것이 청사진이었다.
문제는 당시 공기처럼 주위를 둘러싼 마약과 술, 그리고 제멋대로이기만 했던 그 만행들이었다. 늘 술에 취해있었고, 함께 작업했던 자메이카 출신의 멤버들이 피워대는 지독한 마리화나 연기에 불만만 쌓여 갔다. 정작 밴드의 리더이자 창조의 중추였던 본인이었지만 예술적인 판단조차 거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한마디로 크게 고민하려 하지 않은, 그저 '닥치는 대로 되는대로 해보자'는 식의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골치 아픈 것은 싫었던 그였다.
여러 가지 스타일이 섞여 있지만 유난히 거슬리는(?) 트랙은 단연 'Don't blame me'이다. 'I shot the sheriff'의 후속곡 성향이 짙게 깔렸으며, 보컬은 밥 말리에 모창에 가깝다. 또한, 'Get up stand up'을 떠올리게 하는 진행은 그저 번안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간의 찬란한 경력에 현저히 떨어지는 이질적 작품이다. (설령 아직 접해보지 못한 클랩튼의 팬이라면 유투브를 통해서라도 들어보자. 그도 이런 작업을 했었다.)
송 타이틀대로 그를 비난하거나 중상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얼마 전 '밥 말리와의 접신'을 주장하며 '스눕 라이언(Snoop Lion)'이라는 개명을 한 스눕 독의 선배 격 파격으로 '에릭 '패트릭' 클랩튼'이 아닌 '에릭 '말리' 클랩튼'이라는 개명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촌극이다. 이는 제대로 된 레게도 로큰롤도 아닌, 자메이카 레게와는 전혀 무관한 또 다른 블루스-록일 뿐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그래도 그는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명인. '역시 슬로우핸드!'라는 탄성이 나올법한 명연도 상존한다.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클래식 'Sky is crying'의 낮게 깔리는 블루지의 향연은 앨범의 가장 빛나는 트랙이다. 불온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당시를 살았던 그라도 블루스를 향한 변함없는 애정과 동경은 여전히 음악 속에 담겨있다. 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 인간계에 내려온 기타의 신이라 하더라도 손대지 말아야 할 '금단의 열매'를 탐했다는 혹평을 저버리기는 어렵다.
치기 어린 시절을 향한 여러 품평을 차치하고, 당사자인 클랩튼은 자신의 '레게-블루스'에 대해 가장 직관적이고 객관적인 코멘트를 남긴다. “당시 우리가 하려 했던 일을 비유하자면 분유를 분석해서 모유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는 말이다. 과소평가되었다는 세간의 위안도 있지만 '기타 갓'이라는 드높은 이름에 걸맞지 않은 가혹한 과오임은 틀림없다.
-수록곡-
1. We've been told (Jesus is coming soon)
2. Swing low sweet chariot
3. Little Rachel
4. Don't blame me
5. Sky is crying [추천]
6. Singin' the blues
7. Better make it through today
8. Pretty blue eyes [추천]
9. High
10. Opposite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