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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Sock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2013

by 신현태

2013.04.01

21번째 정규 앨범 < Old Sock >은 고희를 바라보는 대가 에릭 클랩튼의 '음악 재발견'이다. 화이트 블루스의 정수를 만방에 떨친 일렉트릭 기타의 아이콘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오로지 블루스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토대이자 자양분이 되었던 모든 것을 한데 모아 토로했다. 블루스는 물론, 재즈, 레게, 스탠더드 팝과 경음악까지, 장르의 구분은 없다.

2000년대 이후 에릭 클랩튼은 음악 경력을 재정비하는 음반을 연달아 발표했다. 우선은 명인들과 함께한 '블루스 협업'이다. 비비 킹(B.B. King)과는 < Ride With The King >(2000)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고, 제이 제이 케일(J.J. Cale)과는 케일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며 < The Road To Escondido >(2006)를 함께하기도 했다. 그리고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 시절의 동료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와 < Live From Madison Square Garden >라는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 < Me And Mr. Johnson >(2004)을 통해서 정신적 스승에 대한 존경과 감사 역시 잊지 않았다.

< Reptile >(2001)과 < Back Home >(2005)은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앨범이었다. 형제애, 그리고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가족 앨범'이기 때문이다. < Clapton >(2010)에서는 스탠더드 넘버를 선보이기도 했고,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와 함께한 공연 실황 < Play The Blues: Live From Jazz At Lincoln Center >(2011)를 통해 재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들려줬다.

최근작의 키워드는 '장르 통합'이다. 반세기 가깝게 음악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곡들을 재해석하고 헌정한다. 멀게는 블루스 뮤지션의 꿈을 꾸게 해주었던 로버트 존슨에서부터, 자신의 연주를 보고 꿈을 키워온 개리 무어까지 존경의 대상에 선배와 동료, 후배의 구분은 없다. 새로운 앨범 < Old Sock >은 이 모든 것을 요약한 편집(編輯)이다.

우선 신곡이자 첫 싱글로 커트된 'Gotta get over'는 공격적이고 스트레이트한 기타 리프에 에릭의 힘 있는 보컬이 어우러지는 곡으로, 오랜 동반자인 도일 브램홀의 작품이다. 데렉 앤 더 도미노즈의 활동 직전, 델라니 앤 보니(Delaeny & Bonnie)와 발표했던 < On Tour With Eric Clapton >과 클랩튼의 첫 앨범 < Eric Clapton >에서 델라니 브램릿(Delaney Bramlett)이 작곡한 곡들과 비슷한 인상을 전한다. 더욱이 베테랑 소울 싱어 샤카 칸(Chaka Khan)이 백 보컬로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신곡인 'Every little thing' 역시 브램홀이 클랩튼의 가족을 위해 쓴 곡이다. 유려한 멜로디의 팝이지만, 앨범 전체의 기조인 레게리듬은 곡의 주재료다. 후반에는 여자 아이들의 코러스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클랩튼의 세 딸인 줄리(Julie), 엘라(Ella), 소피(Sophie)의 목소리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으로 현재의 삶 그대로를 노래한다.

'Further on down the road'는 타지 마할(Taj Mahal)의 초기 명작 < Giant Step >에 수록된 곡이다. 털사 크루(Tulsa crew)인 제이미 올드애이커(Jamie Oldaker), 칼 래들(Carl Radle) 그리고 딕 심스(Dick Sims)와 미국 투어를 할 당시 처음으로 접한 작품이라고 한다.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서 솔로 앨범을 기획할 당시에 절대적 영감은 원곡 그대로의 레게리듬으로 되살렸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탠다드 넘버 'The folks who live on the hill'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버전인 페기 리(Peggy Lee)의 감성에서 착안했다. 예닐곱의 당시에는 듣지 못했던 그녀만의 새로운 기교는 감성어린 목소리로 스며들어있다. 행크 스노우(Hank Snow)의 'Born to lose'는 캐나다에 뿌리를 둔 클랩튼의 본능적 끌림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올드 스쿨 컨트리의 팬인 그는 레이 찰스(Ray Charles)의 버전을 접한 후 자신의 곡으로 소화해야겠다는 확신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조우한 미국의 블루스 거장 제이 제이 케일(J. J. Cale)과의 협업은 이번에도 존재한다. 클랩튼 대부분의 앨범에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크림(Cream)시절 화염을 내뿜으며 몰아치는 록 기타에서 '슬로우핸드 블루스'라는 일상일대의 방향 전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수록곡인 'Angel' 역시 케일에 대한 오마쥬를 레이드백(laid-back) 스타일로 그려냈다.

빌리 할리데이에 대해서 큰 감흥이 없던 에릭 클랩튼은 나이가 들고서야 그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고 한다. 오로지 연주에만 몰두했던 '기타의 신'은 세월이 흘려보내며 편견을 넘어섰고, 새로운 이해를 통해 'All of me'라는 곡을 재창조했다. 곡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듀엣과 그의 베이스 연주는 위대한 거장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또 하나의 듣는 재미다.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아무래도 개리 무어의 'Still got the blues' 일 것이다. 록 팬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일렉트릭 블루스의 명곡이다. 이번 앨범에서는 원곡과는 완전하게 동떨어진 재즈적 접근의 어쿠스틱 버전으로 재탄생 되었다. 의도는 뚜렷하다. 그에 대한 에릭 클랩튼의 존경을 담음과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도 해석해도 완벽한 명곡임을 알리려는 의도다.

데이빗 보위가 건네준 타이틀 < Old Sock >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깨우침을 한데 엮은 음악 이야기다. 자신을 있게 해준 음악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노래하고 연주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서야 시대를 껴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Guitar God'은 평생을 듣고 즐겨온 '내 안의 음악'을 다시금 자신만의 손맛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위대한 노장의 선율에는 안정감이 넘친다. 그 때문에 과거의 음악을 들추어내며 비교하는 작업은 무의미하다.

젊을 때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고 위로만 올라가려고 한다. 은인이나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놓치게 된다. 이제 그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주는 의미를 깨우칠 나이가 됐다. 에릭 클랩튼은 명과 암이 교차한 인생을 모두 지나쳐왔다. 감사와 경배, 그리고 헌사의 연속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로지 오래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음악적 경지다.

-수록곡-
1. Further on down the road (Jesse Davis / Taj Mahal) 
2. Angel (J.J. Cale) [추천]
3. The folks who live on the hill (Oscar Hammerstein II / Jerome Kern)
4. Gotta get over (Nikka Costa / Doyle Bramhall II / Justin Stanley) [추천]
5. Till your well runs dry (Peter Tosh)
6. All of me (Gerald Marks / Seymour Simmons)
7. Born to lose (Ted Daffan)
8. Still got the blues (Gary Moore) [추천]
9. Goodnight Irene (Huddie Ledbetter / John A. Lomax) [추천]
10. Your one and only man (Otis Redding)
11. Every little thing (Nikka Costa / Doyle Bramhall II / Justin Stanley) [추천]
12. Our love is here to stay (George Gershwin / Ira Gershwin)

produced by Eric Clapon, Doyle Bramhall II, Justin Stanley and Simon Climie
신현태(rocker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