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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84

by 김진성

2008.12.01

마피아 세계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그려낸 <대부>(The Godfather, 1972)와 함께 독보적인 갱스터 무비로 꼽히는 작품이다. 필생의 콤비인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감독과 영화음악의 거목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두 사람이 오랜만에 재결합해서 만든 영화여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미 영상세계에서 두 거장은 실로 “무법자”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전과자였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서로 동문수학하던 이들의 공동전선은 서부영화의 지형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시킬만한 것이었다.

레오네는 기존 서부영화에 아이러닉하게 정교한 안무와 슬랩 스틱을 혼합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펼쳐 보였고, 모리코네는 당시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계가 마치 정석으로 여겼던 전통적인 작곡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휘파람 소리와 차임 벨, 일렉트릭 기타 그리고 하모니카 등을 동원 새로운 사운드의 서부 영화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팀을 이룬 영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 <석양의 건맨>(For A Few Dollars More)(1965), <석양의 건맨2-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 The Ugly)(1966)를 통해 그들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영화장르의 도래를 알리는(국내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말로 더 알려진) 이정표를 세웠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에 이어 <석양의 갱들>(A Fistful Of Dynamite, 1971)를 마지막으로 둘이 함께 호흡을 맞춘 작품을 한동안 만날 순 없었다. 하지만 결국 레오네는 60년이란 장대한 시간에 걸친 유태인 갱스터를 다룬 서사극 <원스 어폰 어 타임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로 돌아왔고, 모리코네 역시 그의 작품역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명작 스코어를 창출해냈다.

영화 전편에 걸친 음악은 메인 테마를 목관악기, 현악, 피아노, 아코디언 등의 악기를 최대한 활용해 빠르고 느리게 또는 무작, 재즈 등 다양한 스타일로 빚어낸 끊임없는 변주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만점의 테마선율은 영원히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전 레오네의 영화음악을 특징짓던 가극 풍의 스코어에서 벗어난 모리코네의 새로운 스타일은 실제 그 이후에 발표된 <언터처블>이나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신호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게오르그 잠피엘(Gheorghe Zamfir)과의 조우는 각별했다. 벨기에 출신의 팬 플루트(팬파이프)의 대가로 세계적 명성을 소유한 잠피엘의 연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이 추억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풍부한 영감을 담아낸 것이었다.

관객들은 비틀스의 'Yesterday' 하나만으로도 장피엘의 연주가 오리지널 선율을 얼마나 처연하게 재해석해내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사운드트랙에는 영화에 삽입된 이 곡을 포함해 틴 팬 앨리 팝인 'Summertime', 'Night & day' 등이 수록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국내에서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잠피엘의 팬파이프 연주앨범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Childhood memories'와 'Cockey's theme'에서 들을 수 있는 그의 연주를 접하는 순간 사람들은 1930년대 뉴욕의 뒷골목에서 펼쳐지던 주인공들의 사랑, 우정, 욕망, 배신의 성장기를 그리고 관객들 자신들의 과거를 아련히 떠올린다. 그만큼 그의 팬 플루트가 품어내는 사운드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의 연주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세인의 기억 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머물러있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정당하다.
김진성(saintopia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