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이 말해주듯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감독의 화제작 <시네마 천국>은 '로맨스와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20세기 마지막 명화 중 하나이다. 198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위시해 1990년 영국 아카데미시상식(British Academy of Film and Television Arts)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필립 느와레), 남우조연상(살바토레 카시오), 외국어영화상, 각본상을 획득하며 명실상부한 시대의 걸작으로 그 가치를 공인받았다.
1991년 영국아카데미에서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Andrea Morricone)가 최우수스코어부문을 수상함으로써 음악적 공헌도 치하(致賀)를 받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러나 영화에 쏟아진 환대와 영예만큼 유수 영화시상식에서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음악적 공적에 대한 후사(厚賜)는 없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영화 전체를 휘감는 영화음악의 감동이 절대적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모리꼬네를 향한 아카데미의 저주를 이 작품으로 풀 수 없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대목.
영화는 어느 작은 마을 영사기사의 꿈을 키우는 명랑소년 토토의 성장기를 다룬다. 2차대전 패전국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꽃피는 희로애락의 인생역정을 소재로 그려낸 훈훈한 인간적 감동의 드라마. 그러한 주제의식에 근거해 창출된 테마음악은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필립 느와레) 아저씨를 도와준답시고 커닝페이퍼를 주고받고, 미사시간에 졸다가 신부님에게 혼나는 어린 토토-소년 살바토레 역의 살바토레 카스치오(Salvatore Cascio)의 씹어먹고 싶게 깜찍 귀여운 연기와 중년의 살바토레 역에 자크 페렝(Jacques Perrin)이 종반부 검열로 잘려나간 키스 신(scene)들을 연속상영으로 보면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각인되었다.
더욱이 영화의 배경시대인 1930년대 대공황 하의 미국이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간판무대로 뮤지컬과 영화를 내걸어 대중들의 현실도피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듯, 네오리얼리즘(Neo Realism)이 고개를 든 당시 영화의 매력은 이탈리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부합해 비춰지는 영상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으로 관객들의 이목과 감정을 훔쳤다.
역사의 궤적을 타고 전개되는 영상은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전개된다. 과거시점에서부터 종극(終劇)에 해당하는 현재의 시점으로 옮겨오는 스토리라인은 회한과 상실의 아픔을 주요한 맥락으로 달콤하고도 안타까운 심정을 동시에 우려낸다. 그 주 맥락을 타고 흐르는 음악 또한 극적 삶의 애환과 환희의 궤적에 조화롭게 따라 가야한다. 영상미가 압도하면 상대적으로 음악이 쳐지고 반대로 음악이 튀면 영상의 아름다움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이러한 배합을 완벽하게 조율해 <시네마천국>을 영상과 음악의 완벽한 합작품으로 만들어낸 인물은 이태리가 낳은 영화음악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nio morricone)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별칭이 붙은 서부영화와 갱영화의 상징적인 작곡가로 불릴 만큼 절대적으로 독보적인 사운드를 구사, 구세대부터 신세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매니아를 형성하고있는 그의 음악적 숨결이 더해짐으로해서 극적인 감동이 비로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감성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 애련한 현악과 그 사이에서 심금을 울리는 색소폰이 가미된 메인테마가 압권인 사운드트랙은 화려한 화성을 자랑하는 대편성 오케스트레이션이 아닌 부드럽고 정감 어린 소품형식의 스코어로 구성되었다. 건반, 스트링, 목관악기를 주된 악기로 편성한 매혹적인 감상스코어는 관객을 주인공의 회한과 슬픔의 감성으로 온통 물들인다. 엔니오의 아들 안드레아가 작곡한 'Love theme'(사랑의 테마)는 이보다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조의 절정을 선사한다. 세기의 명곡으로 남을만큼 인상적이다.
비록 다양한 변주가 없어 단조로운 면이 아쉽지만 여타 비슷한 드라마스코어와는 비교하지 못할 상징적이고 고상한 선율과 풍부한 감상성을 갖고 있다. 이는 모리코네 영화음악의 특징 중 하나라면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주 선율 안에서 되풀이되는 명징(明澄)한 몇몇 멜로디의 유연한 흐름에 기인한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선율의 반복 변주로 청중을 사로잡는데는 누구도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영화 전반에 걸쳐 클로즈업되는 등장인물의 표정과 감정선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을 잔잔하고 낭만적인 터치로 따라가는 음악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움켜쥐게 만든다.
<시네마천국>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작품으로 후대의 분명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변화하면서도 영상의 흐름을 독특한 사운드구성으로 다스릴 줄 아는 장인의 혼이 녹아있기에 명작으로서 가치가 더 빛나는 진품이라 할 수 있다. 허나 늘 그의 매니아를 슬프게 하는 건 유독 오스카와의 인연이 없다는 것일 게다. 이 점 또한 '명인의 진정한 가치는 상복이 아닌 명품과 함께 남는다'는 말로서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가공할 성실맨의 자세로 독보적인 위치를 지킨 그는 어떤 한 작품에 국한되기를 거부하는, 그 자체로 위대한 작곡가임을 여실히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