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The E.N.D. (Energy Never Dies)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2009

by 성원호

2009.07.01

무엇을 하든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는 음악 역시 다르지 않다.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타이밍이 일치한 작품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반면에 이미 철저히 검증되고 의도된 공식을 되새김한 음악은 대중의 즉각적인 사랑은 받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새 앨범 < The E.N.D. >가 좋은 예다.

자칭 '미래형 일렉트릭 펑크 팝'을 지향한다는 이번 앨범은 분명 잘 만들어진 팝 앨범이다. 일렉트릭 비트에 펼쳐지는 오토 튠(Auto Tune)을 비롯한 각종 휘황찬란한 이펙트의 향연은 더 없이 대중적이고, 에너제틱하다. 한마디로 인기를 끌만한 음악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Boom boom pow'는 12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후속 싱글 'I gotta feeling'도 연이어 1위에 오르는 등 그룹에게 전에 없던 상업적 성공을 안겼다.

하지만 무분별한 오토 튠의 공해와 전자사운드의 범람으로 인해 이미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소위 '능력자들'인 블랙 아이드 피스가 4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신작 < The E.N.D. >는 확실히 실망스럽다. 드럼 비트와 오토 튠으로 채색된 보컬, 각종 이펙트가 가득 채워진 < The E.N.D. >에서 연상되는 것은 블랙 아이드 피스가 아닌,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팀바랜드(Timbaland),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모습 뿐이다.

첫 싱글 'Boom boom pow'에서 그들은 'I'm so 3008. You so 2000 and late'라고 자신감 있게 외치지만, 그 자신감은 오직 가사에만 국한된 것이라 설득력이 없다. 그들이 3008년 스타일이라고 외치는 'Boom boom pow'의 사운드에는 획기적이거나 진보적인 시도 대신, 어지럽고 잡다한 이펙트만 가득하다.

롭 베이스 앤 디제이 이-지 록 (Rob Base & DJ E-Z Rock)의 1988년 히트곡 'It takes two'를 샘플링한 'Rock that body' 역시 3008년식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몸이 들썩거리는 일렉트릭 팝 넘버 'I gotta feeling'이나, 퍼기(Fergie)의 보컬이 주도하는 트랜스 넘버 'Meet me halfway', 곡 전면에 수놓아진 윌아이엠(will.I.am)의 오토 튠 사운드로 인해 다프트 펑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Alive' 등 거의 모든 곡이 일정 수준은 갖추었지만, 그들이 전에 선보였던 참신한 리듬이나 비트의 매력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물론, 경쾌한 비트와 곡 구성,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퍼기의 보컬과 멤버들의 구성진 래핑이 잘 살아난 'Now generation'과 심플한 구성에 평화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One tribe'는 제법 무게감 있고 진지하게 다가오는 곡들이지만, 이마저도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앨범에서 충실히 구현한 것은 앨범의 모토인 'Energy'가 전부다. 앨범의 '에너지 살리기' 앞에 그들의 강점이었던 리듬 구성, 메시지적인 요소, 절묘한 샘플링 사운드는 자취를 감췄다. 앨범 전체를 구성하는 사운드와 가사가 전해주는 것은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과 파티 후의 공허함 뿐이다. 글의 초반에도 언급했듯,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팝 앨범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이 콘셉트로 내세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스타일'은 < The E.N.D. >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변신을 위해 그룹 고유의 정체성마저 내던질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은 더욱 더 진하게 남는다.

-수록곡-
1. Boom boom pow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2. Rock that body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Baptiste, D. Guetta, J. Gomez, A. Walder, M. Knight, Muns)
3. Meet me halfway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K. Harris, J. Baptiste, S. Gordon)
4. Imma be (A. Pineda, J. Tankel, W. Adams, S. Ferguson, J. Gomez, T. Brenneck, M. Deller, D. Foder, K. Harris)
5. I gotta feeling (A. Pineda, W. Adams, S. Ferguson, D. Guetta, J. Gomez, F. Riesterer) [추천]
6. Alive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Baptiste, J. Gomez)
7. Missing you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P. Board, J. Baptiste)
8. Ring-a-ling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K. Harris)
9. Party all the time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10. Out of my head (W. Adams, A. Williams, S. Ferguson, J. Gomez, G. Pajon, K. Harris, T. Orindgreff, P. Board)
11. Electric city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B. Berns, R. Gottehrer, R. Feldman, G. Goldstein)
12. Showdown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R. Buendia)
13. Now generation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T. Orindgreff, G. Pajon) [추천]
14. One tribe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P. Board) [추천]
15. Rockin to the beat (A. Pineda, W. Adams, S. Ferguson, J. Gomez, G. Pajon, P. Board)
성원호(dereksungh@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