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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Ocean Boulevard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1974

by 임진모

2008.03.01

1960년대 말 그룹 크림(Cream),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통해 경천동지의 연주 충격을 전하며 '기타의 신'으로 올라선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1970년대가 개막하면서 솔로와 또 다른 실험인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 The Dominos)로 당당한 음악행보를 계속했지만 사적으로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필생의 여인 패티 보이드에게 당한 실연의 아픔은 그를 자아 상실의 혼돈과 오랜 약물중독으로 내몰았다. 1971년과 1972년 그의 음악활동은 정지되었고 이듬해 더러 무대에 나섰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으며 데릭 앤 더 도미노스의 2집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세인의 관심이 서서히 떨어져나갈 무렵인 1974년, 에릭 클랩튼은 마침내 1970년대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솔로 작품으로 평가받는 < 461 Ocean Boulevard >로 단숨에 거장의 신용을 회복하며 성공적으로 컴백한다. 앨범은 솔로로는 처음으로 전미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그 무렵 뮤지션들 사이에서 새로운 트렌드였던 레게를 자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곡 'I shot the sheriff' 역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40년 음악이력 중 유일한 차트 1위곡이다)

앨범이 호응을 얻은 것은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망가진 자신에 대한 구원을 요청하면서 단호한 의지를 피력한 메시지가 컸다. 앨범 첫 곡에 민요 'Motherless children'을 배치한 것은 실연과 약물중독의 수렁에서 헤매는 자신의 가엾고 외로운 처지를 고백하려는 것이었다('어머니가 죽으면 아무도 어머니처럼 너를 대해줄 사람은 없어...'). 그의 평생 음악장르라 할 흑인노예의 슬픈 블루스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게 음악영감을 제시한 '델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Steady rollin' man'과 초기 블루스의 영웅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I can't hold out' 그리고 역시 블루스 거목 자니 오티스(Johnny Otis)의 읊조리는 'Willie and the hand jive'를 연주하고 노래한 것은 당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에릭 클랩튼은 가장 빼어난 백인 블루스맨으로 꼽힌다. 흑인 블루스의 감성을 가장 뛰어나게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기교나 연주력이 아닌 영혼의 측면에서였다. 그의 이지러진 삶은 억압받은 자의 음악인 흑인 블루스를 하기에 딱 알맞았다. < 461 Ocean Boulevard > 또한 분명한 블루스 앨범이다.

실연과 약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는 존재 회복을 위한 구원의 메시지에 기댄다. '신이여, 저는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나이다/ 하지만 제발 제게 살아갈 힘을 주소서...'라는 'Give me strength'의 노랫말은 너무도 절절하다. '나의 표지를 읽어주고 집시가 돼주오/내 깊은 속을 찾기 위해 바라는 게 뭔지 말해주오/ 당신이 내 마음을 아니까 제발 내 곁에 있어줘'하는 'Please be with me'의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교차로에 서서 표지판을 읽으려 하네/ 답을 찾으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나요/ 항상 난 알아요/ 사랑을 심어 그것이 커나가게 하라...' 하는 'Let it grow'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도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의 멍에에서 탈출하지는 못한 걸까. 'Give me strength'는 1990년대 말 국내 드라마에 삽입되어 다시금 주목받았으며 클라이맥스에서 고조되는 주술적 기타연주가 한편의 환상을 제공하는 'Let it grow'는 싱글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앨범 출반 때부터 팬들의 절대적인 애청을 누린 골든 레퍼토리다. 앨범의 숨은 보석이라 할 이 두 곡은 에릭 클랩튼이 작곡했다. 이 앨범은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는 물론, 그다지 조명되지 않은 작곡자의 측면으로도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도 했다.

앨범 타이틀인 '461 Ocean Boulevard'는 명 프로듀서 탐 도드(Tom Dowd)의 사설 스튜디오가 위치한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거처 주소로서 여기서 에릭 클랩튼은 재활의 희망을 도모하게 된다. 고백과 구원은 흔히 자신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난 너의 사악한 죄들에 복수를 할 거야.../ 준비해 준비해/ 그는 네게 상처를 줄 사람이야'하는 'Get ready'는 조금은 무섭다. 아마도 밥 말리(Bob Marley)의 과격한 무법자 레게 'I shot the sheriff'는 레게에 대한 음악적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그 강인한 메시지에 끌린 선택일 것이다.

화염을 발하는 'Layla'가 웅변하는 기타영웅의 이미지, 에릭 클랩튼은 이것과도 작별을 고한다. < 461 Ocean Boulevard >는 스스로 기타의 톤을 낮추며(laid-back) 연주통제력을 발하는 새 출발의 정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고개 숙인 자의 농익음, 낮춘 자의 강함을 접한다. < 461 Ocean Boulevard >는 다시금 음악은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자들의 터전임을 가르쳐준다. 테크닉의 음악이 아닌 삶의 음악이 여기 있다.

-수록곡-
1. Motherless children [추천]
2. Give me strength [추천]
3. Willie and the hand jive [추천]
4. Get ready
5. I shot the sheriff [추천]
6. I can't hold out
7. Please be with me
8. Let it grow [추천]
9. Steady rollin' man
10. Mainline Florida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