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Lucky 7
공일오비(015B)
2006

by 이대화

2006.09.01

첫 곡 '처음만 힘들지'를 듣고서 적잖이 놀랜 팬들이 많을 것 같다. 구식 게임기에서 나는 '뿅뿅~'거리는 소리가 진지하고 감동적인 음악을 기대했던 마음을 한껏 당황시키기 때문이다. 꼭 진득함을 바라고 있지 않았더라도 이 노래에 사용된 '8bit' 음원은 보편적인 호감도와도 거리가 멀다.

정석원도 이를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토록 널리 사랑받았던 노래인 박정현의 '꿈에'를 프로듀싱했던 인물이 어느 음악 스타일이 청중의 어떤 반응을 가져오는지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의적인 삽입이다. 게다가 10년만의 컴백 앨범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첫 트랙에 위치시켰다는 것은 일종의 심술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정석원의 정체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스타일', '한국에선 없었던 스타일'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처음만 힘들지'의 낯설음은 그래서 새로운 사운드에 목말라 있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고민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노력 없이 누가 '개성'을 말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에서도 신선한 소재를 수용하려는 시도는 계속 발견된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Through the wire'에서 선보였던, 샘플링 음원을 보통 속도보다 빠르게 재생시켜 음정을 높이는 기법을 쓰고 있다. 이는 본래 음원을 '앵앵~'거리는 소리로 바꿔버리는 결과를 낳았고, '처음만 힘들지'의 '뿅뿅~'거리는 소리와 매한가지로 미추의 경계가 애매하다. 하지만 정석원은 이런 기법들이 참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런 상식 밖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사운드 좀 만질 줄 안다”는 칭찬을 얻을 만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 밖에도 호란이 부른 '성낭팔이 소녀'에는 툭툭 끊어지는 건반 소리가 사용되었고, 연주곡인 '간장드레싱 레시피'에는 요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는 앨범 부클릿에 작업 노트를 따로 만들어서 해당 노래에 사용된 사운드 편곡 방식을 친절하게 가이드까지 하고 있다.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들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동기 설명은 없고, 악기와 기법 설명에만 열중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경우는 “간단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 후 그것을 자르고, 조옮김하고, 붙이고 거꾸로 돌리고, 반복시키고 등등의 편집을 통해 피아노트랙을 완성했습니다”고 쓰여 있다. '간장드레싱 레시피' 역시 “짧은 멜로디의 샘플 파형을 잘게 잘라 재배열한 후, 한음, 한음을 코드에 맞추어서 조옮김시켜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 약간은 “너무 자의적이 아닌가?”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특히, '아주 오래된 연인들', '신인류의 사랑', '이젠 안녕' 같은 히트 곡들이 공일오비 팬들에게 주었던 쉽고, 보편적이며, 시대를 꿰뚫는 공감대를 생각했을 때에 그렇다. '처음만 힘들지',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 같은 곡들은 왠지 모르게 그들이 변했다는 인상을 준다. 참 살갑던 사람이 잠시 잠적 뒤에 도인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느낌이랄까. '과도한 개성 추구로 인한 후퇴'라고 결론지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너무 성급하지 않게 좀 더 세심히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 상상력이란 측면에서 인정될 만한, 독특하고 재밌는 기법 등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지금의 가요계에서는 단 한 줌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똑같이 반복 되는 편곡의 획일화는 음악계 자체를 지루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정석원의 재치는 그래서 간만에 맛보는 신선함이자, 선배 뮤지션으로서 귀감도 줄 수 있는 '긍정적 객기'다.

정석원은 앨범의 제작 동기에 대해 “제작자들의 과도한 맞춤형 주문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충분히 이런 '반란'의 음악이 나올 만한 정황이다. 이토록 사운드에 집요하게 구는 것을 보면 그는 여전히 욕심도 참 많다.

-수록곡-
1. 처음만 힘들지 ( 작사 : 정석원 / 작곡 : 정석원 )
2. 나 아파 ( 정석원 / 정석원 )
3. 그녀에게 전화오게 하는 방법(Feat. Verbal Jint) ( 정석원 / 정석원 )
4. 잠시 길을 잃다 ( 정석원 / 정석원 )
5. 성냥팔이소녀 (Feat. 호란) ( 정석원 / 정석원 )
6. 우린 같은 꿈을 꾼 거야 ( 정석원 / 정석원 )
7. 너 말이야 (Feat. 박정현, Dynamic Duo) ( 정석원, 다이나믹 듀오 / 정석원 )
8. 모르는 게 많았어요 (Feat. 유희열) ( 정석원 / 정석원 )
9. 간장드레싱 레시피 ( 정석원 / 정석원 )
10. No way
11. I hate you
이대화(dae-hwa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