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We Love Life
펄프(Pulp)
2001

by 안재필

2001.11.01

하얀 바탕에 뚜렷이 새겨진 밴드 이름 속에 울창하게 우거져있는 나무들이 담겨있는 자연 친화적인 앨범 재킷. 그리고 '우리는 인생을 사랑한다'는 아주 낙관적이고 여유 작작한 앨범 타이틀. 이제 더 이상 'Common people'의 펄프를 기대하기는 힘든 것일까.

올 가을의 끝물에 내놓은 펄프의 일곱 번째 정규 음반은 외양부터 그런 인상을 들게 한다. 늙는다는 것에 대해 읊조렸던 전작 <This Is Hardcore>의 업그레이드?. 'The trees', 'I love life', 'Birds in your garden'등등 수록곡들의 제목 또한 그러하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심오하고도 지극히 당연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비스 코커는 음반의 플롯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일들과 관련되어 있다”며 어떤 곡들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세필드의 지역 이름 'The Wicker'에서 이름을 따온 'Wickerman'은 자비스가 어렸을 때 강을 탐사하는 것을 묘사한 곡이고, 'Roadkill'은 도로 위에서 사슴이 천천히 죽는다는 내용이고, 'I love life'는 다시 한번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는 노래이다.

하지만 사운드는 <This Is Hardcore>의 가라앉음과는 대조적이다. 펄프는 신보에서 어느 정도 1995년 작품 <Different Class>의 활기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연극적인 자비스의 음색은 내레이션과 노래를 오가며 진두지휘하고 있고, 기타, 키보드, 베이스, 그리고 드럼도 볼륨을 높이며 그 대열에 적극 동참했다. 'Weeds', 'The night that minnie timperley died'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전설적인 프로듀서 스코트 워커(Scott Walker)가 프로듀싱을 맡아 웅장함과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스코트 워커는 오케스트레이션과 풍성한 보컬 하모니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운드에 양기를 불어 넣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Weeds Ⅱ(Origin of the Species)', 'Bob lind' 등에서 접할 수 있다.

펄프의 신보는 그러나 전혀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스코트 워커를 초빙하여 <Different Class>의 느낌을 살리는데는 성공했으나, 리모델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딱히 눈에 띄는 싱글을 찾기 힘들고, 주목할만한 변화도 없다. 상투적인 '펄프표' 사운드다. 그나마 8분이 넘는 프로그레시브 대곡 'Wickerman'에서 희망을 건져 올려 다행이다. 인생을 사랑하자! 그리고 펄프를 사랑하자!

-수록곡-
1. Weeds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3:42
2. Weeds II (The Origin of the Species)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3:58
3. The Night That Minnie Timperley Died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38
4. The Trees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49
5. Wickerman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8:17
6. I Love Life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5:31
7. The Birds in Your Garden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11
8. Bob Lind (The Only Way Is Down)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16
9. Bad Cover Version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16
10. Roadkill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 4:16
11. Sunrise (Banks/Cocker/Doyle/Mackey/Mansell/Webber) - 6:02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