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Different Class>에서 '나는 보통 사람이 되길 원한다'며 영국 국민들과 합창할 때까지만 해도 펄프, 아니 자비스 코커(1963년 생)는 힘이 넘쳐있었다. 엄청난 땀의 결실을 통해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은 그는 당당했다.
그리고 그의 강고한 행동과 몸짓에 팬들은 열광했다. 글레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피날레 공연에서도 그랬고, 브릿 어워즈 시상식에서 마이클 잭슨에게 행한 '퍽 유(Fuck You)'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터처블이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자비스 코커는 부쩍 늙어버렸다.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예전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그는 깊은 산 속 옹달샘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려 칩거했다. 나이 탓일까. '하드코어'라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타이틀을 내건 이 음반에서 자비스는 나이 먹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금발의 반란 여인 재킷 사진, 호기심을 충동질하는 앨범 제목은 그저 펄프의 늙음을 감추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다. 전반적인 주제는 조금씩 쌓여만 가는 세월의 흔적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Help the aged'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내용이며, 'Dishes'에서는 가정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사운드도 세월을 동반했다. 들뜨고 흥분되던 입자들은 거의 거세되고, 어쿠스틱과 오케스트레이션이 대폭 보강되어 풍성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코커의 음색은 차분하며, 캔디다 도일의 키보드도 고급스럽다. 'The fear', 'TV movie' 등에서 접할 수 있다.
펄프는 세월의 흐름을 역행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들의 쭉 지켜 봐온 팬들에게는 낯설음일 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이야말로 진짜 화끈한 하드코어가 아닐까.
-수록곡-
1. The Fear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2. Dishes (Banks/Cocker/Doyle/Mackey/Senior/Webber)
3. Party Hard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4. Help the Aged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5. This Is Hardcore (Banks/Cocker/Doyle/Mackey/Thomas/Webber)
6. TV Movie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7. A Little Soul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8. I'm a Man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9. Seductive Barry performed by Pulp / Neneh Cherry
10. Sylvia (Banks/Cocker/Doyle/Mackey/Webber)
11. Glory Days (Banks/Cocker/Doyle/Genn/Mackey/Webber)
12. The Day After the Revolution (Banks/Cocer/Cocker/Doyle/Mackey/Webber)
13. Like a Friend (Doyle/Pu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