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플로어는 죽었다’며 ‘Rock music’으로 새 국면을 예고한 찰리 XCX의 행보에 음악계가 기대감을 보인 반면 일각에선 비판 여론 역시 존재했다. 언더그라운드와 팝 사이의 경계를 허문 언더스코어스의 < U >나 지하 저편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슬레이터의 < Wor$t Girl In America > 등 동시대 뮤지션들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제아무리 ‘브랫 서머’를 주도한 자의 발언이라고 해도 클럽 음악의 열기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담론에 있어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지는 않았어도 꿋꿋하게 이 영토를 지켜온 이도 한마디 더 얹는다. 진짜는 지금부터라고.
'This is the beginning of the end/Everything before is just pretend'
(이건 끝의 시작이야, 그전까지는 모두 가식이었어)
-‘Detour’ 中-
독일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 킴 페트라스의 삶은 기실 증명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꾸준한 활동으로 입지를 다진 그는 리퍼블릭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뒤, 샘 스미스와의 합작 ‘Unholy’를 통해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로서는 최초의 그래미 수상자란 영예를 안으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다만 메인스트림으로의 편입은 이내 기대와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데뷔 앨범의 유출 사고 이후 급하게 마련한 1집은 그 잠재력에 비해 윤곽이 희미했고, 유출된 곡들을 엮어 발매한 2집 또한 본래 구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외에도 여러 잡음을 낳은 소속사에 작별을 고하고, 칼을 갈고 돌아온 이번 앨범은 다르다. 이미 과포화된 일렉트로닉 물결에도 굳건한 강성의 파동을 던진다.
시작부터 저돌적이다. ‘Detour’로 쇼의 개막을 알리는 호스트는 군중에게 망설이지 말고 폭발적인 전자 음악에 몸을 맡기라고 외친다. 섹슈얼한 가사를 내뱉는 ‘DTLA’와 ‘101’ 등 대부분 킴 페트라스식 화법의 연장선에 있지만 극한으로 치닫는 신시사이저와 보컬 톤은 전례 없이 맹렬하다. 고강도의 사운드가 그의 정체성을 점화하는 한편 뇌리에 박히는 멜로디는 여기에 화력을 보탠다. Y2K 향수를 자극하는 ‘I like ur look’과 친화적인 댄스 팝 ‘Need for speed’까지 갖춘 본작에선, 오늘을 즐길 준비가 된 자라면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도 흘러나오는 음악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이처럼 진정한 파티걸이라 함은 누구든 자신의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거침없는 질주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상념을 덮어두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근래의 하이퍼 팝 혹은 전자 음악 신을 관통하는 미학이겠으나 순간에 기댄 쾌락은 오래 남지 않는 법. < Detour >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해방 끝에 도달하는 연대의 감각이다. 유년 시절의 아픔을 음표에 새겨 넣은 ‘Brutalist’와 어쿠스틱 선율 위로 이별의 감정을 논하는 ‘Jeep’에 이어 ‘커리어’의 발음을 비튼 ‘Korea’에서의 사적인 고백은 앨범의 맥락을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넘어 각자의 상흔을 투영하는 공간으로 확장한다. 트랙 간의 매끄러운 연결과 날 선 사운드는 모두 일종의 장치일 뿐, 그가 개최한 파티의 진가는 소수자의 관점에서 채집한 보편성에 있다.
결국 클럽 음악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약동하는 인터넷 문화와 더불어 2년 전 온 세상을 지배했던 < Brat >의 여파까지 여타 굵직한 흐름과 맞닿아 있지만 < Detour >는 끝내 킴 페트라스라는 이름으로 빛나는 작품이다. 작금의 문법을 접목하면서도 자의식을 표출하는 사운드에는 특유의 반항아적 기질이, 그럼에도 너른 포용력을 지닌 팝적 센스에서는 아티스트로서의 노련함마저 자리하고 있다. 위태로운 절벽 끝에서 찾아낸 반전의 우회로는 그렇게 커리어의 2막을 연다. 마침표 대신 또다시 뜨거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곡 ‘Freak it’이 곧 끝없는 가속의 신호탄. 클럽의 밤은 다시금 이방인의 손끝에서 새 숨결을 얻었다.
-수록곡-
1. Detour [추천]
2. DTLA
3. I like ur look [추천]
4. Check it
5. Polo
6. Brutalist [추천]
7. Need for speed [추천]
8. Jeep
9. 101 [추천]
10. Basketball
11. Bitch ball out
12. Korea
13. Freak it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