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Brat
찰리 XCX(Charli XCX)
2024

by 이승원

2024.06.24

실종 사건이다. 신세대 팝의 아이콘 찰리 XCX가 종적을 완전히 감췄다. 앨범 커버에는 정체 모를 녹색과 영단어 하나뿐, 줄곧 맨 앞에 얼굴을 내밀던 지금까지와 달리 표지 그 어디에서도 찰리의 몽타주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반예술적 기행이 가리키는 바는 무엇일까? 하이퍼팝의 여왕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질문을 바꿔 보자. 찰리는 왜 스스로의 모습을 지워 버렸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 Brat >이 궁극적으로 찰리 XCX의, 찰리 XCX를 위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 Sucker >의 치기 어린 반항부터 < Pop 2 >의 미래 지향, < Crash >의 의도된 변절까지, 모든 음악적 발산을 스스로에게 집약하던 과거와 달리 < Brat >의 곡선은 무거운 연기처럼 퍼져 나가며 정확히 클럽 신의 밑바닥으로 수렴한다. 몸소 하이퍼팝의 상징적 존재로 군림한 < Charli >의 안티테제이자 모두의, 모두를 위한 작품인 것이다.


이례적인 지향은 작품 곳곳에서 그 심오한 의중을 드러낸다. 목표는 '가까이 다가가기'. 중심 문장으로 일관하는 'B2b'의 경우처럼 곡 대부분의 서사를 간결히 압축함은 물론 주변 인물이나 일상적 소재 또한 적극적으로 끌어오며 해석의 필요성을 지우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소리의 흐름을 즐기도록 유도한다. 관객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신비주의 탈피이자 작품과 청자 사이 제4의 벽을 허물기 위한 일련의 장치인 셈이다. 비교적 까다로운 하이라이트 멜로디의 '360', 'Von dutch'가 미리 리드 싱글로 공개된 것도, 종종 대동하던 피처링 인력이 리믹스 쪽에 집중된 것도 모두 같은 맥락. 방지턱이 될 만한 요소들을 매끄럽게 가다듬음으로써 관객은 복잡한 과정 없이 주어진 자극에 즉각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사운드 구성 또한 의도가 명백하다. 비트 하나하나의 질감을 부각하고 멜로디를 최소 단위로 분절해 박자감을 강조함으로써 클럽 공연이라는 작품의 테마를 안정적으로 구축한다. 멜로디와 사운드의 존재감을 충돌시키면서 부조화의 쾌감을 극대화한 < Charli >와 완전히 대비되는 방법론인데, 관객의 규칙적, 정형적인 움직임을 돋움과 동시에 보컬리스트로서 스스로의 존재성 자체를 지우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토록 치밀한 삭제를 통해 < Brat >은 관객에 완벽하게 스며든다. 누구나 거리낌 없이, 빠짐없이 즐길 수 있는 '클럽 클래식(Club classic)'의 완성이다. DJ 찰리의 짜릿하고 중독적인 인도에 맞춰 침대 근처에 머물던 < how I'm feeling now >의 개인적 경험은 비로소 보편적 어법으로 승화하고('Everything is romantic', 'So I' 등), 주장 형태에 그치던 연대의 메시지 역시 대화 형식으로 변모하여 눈 깜짝할 새 클럽 전역으로 전염된다('Girl, so confusing', 'Mean girls' 등). 일차원적 묘사를 넘어 화합이라는 목적 자체로 돌진하며 팝 음악의 본질을 관통하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연대다. 여성주의를 내세우며 앨범 표지를 단순화한 불만 섞인 반항이 기행을 넘어 반예술적 자애로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연대 덕분. 예술이 예술가의 의도마저 초월하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렇듯 예술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작품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굳건한 찰리 XCX의 예술적 자아에 있다. < Crash >와 'Speed drive'에서 이어지는 댄스 팝 발화부터 < Charli >의 신고전주의까지, 아티스트가 역설해 온 음악적 기술과 방법론이 가득 들어차 있기에 작품은 단순 탈선을 가뿐히 상회하는 예술적 맥락을 확보한다. 클럽 튠의 겉옷을 입었을 뿐 커리어의 총망라라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Club classics', 'Sympathy is a knife', 'Talk talk'의 삼연타는 'pink diamond', 'forever', 'claws'로 이어지는 < how i'm feeling now >의 완벽한 재해석. 스스로의 유일성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존재성 없이 존재감을 발휘하는 경지다.


하나의 커다란 포용적 물음이자 그 완벽한 해답으로 귀결되는 작품이다. < Brat >의 저항과 박애를 통해 찰리는 팝 신에 만연한 작가주의 그 반대편에 우뚝 서며 일련의 담론을 던지고 이에 직접 화답한다. 팝의 본질은 무엇인가? 범접할 수 없는 높이와 발밑으로 떨어지는 시선이 팝 음악의 진정한 지향인가? 항상 두 발짝 앞에, 또 두 발짝 높은 위치에 있던 팝의 선구자 찰리 XCX는 그 아득한 지위에서 기꺼이 내려와 관객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스스로 주조한 새 시대 팝 레거시(legacy)에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군림을 거부하며 이룩한 더 높은 도약. 찰리 XCX와 < Brat >의 해방 선언으로 모두의, 모두를 위한 팝은 이제 모두에 의한 미래로 달려 나간다.


-수록곡-

1. 360 [추천]

2. Club classics [추천]

3. Sympathy is a knife [추천]

4. I might say something stupid

5. Talk talk [추천]

6. Von dutch [추천]

7. Everything is romantic [추천]

8. Rewind

9. So I

10. Girl, so confusing [추천]

11. Apple

12. B2b [추천]

13. Mean girls [추천]

14. I think about it all the time

15. 365 [추천]

이승원(ibgalatea116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