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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thering Heights
찰리 XCX(Charli XCX)
2026

by 박승민

2026.04.24

음악가의 커리어는 언제나 선형적인 궤적만을 그리지 않는다. 허나 그 길이 곧고 평탄해 보일 때, 호사가들은 줄기에서 갈라진 곁가지를 간과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 Brat >으로 2020년대 팝 시장에서 가장 거대한 돌풍을 일으킨 찰리 XCX 역시 예외는 아니다. 후기에 해당함에도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뒤덮은 듯한 녹색 안개 안쪽에는 하이퍼팝 이전의 그가 남아 있다. 스스로 첫 정규작  < True Romance >를 뿌리로 삼았다고 밝힌 만큼 데뷔 초 잔향과 활동 곳곳의 편린이 폭풍의 언덕 위로 어른거린다. 


파티 걸의 자아를 걷어낸 자리에 드리운 쓸쓸함과 외로움이 본래 감성과 퍽 어울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멤버 존 케일의 스포큰 워드에 위압적으로 울려 퍼지는 첼로를 더해 음험한 분위기를 형성한 ‘House’는 앨범의 기조를 단박에 제시하는 훌륭한 출발선이다. 이어지는 트랙도 마찬가지다. 현악기를 중첩하는 방식으로 풍성히 층을 쌓아 만들어낸 사운드스케이프는 근래의 일렉트로팝과 다른 감흥을 제공한다. 휘몰아치는 신시사이저 연출의 ‘Dying for you’와 장대한 기악에 목소리로 맞선 ‘Always everywhere’은 영상에 종속되어 기능하는 사운드트랙의 제약을 넘어설 기세로 몰아붙인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So I’나 ‘Track 10’ 등에서 드러났던 애상적인 보컬을 연이어 듣는 경험은 분명 각별하지만 모든 곡의 접근법이 유사해 흐름이 쉬이 느슨해지는 탓이다. 와중 < Crash >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들리는 ‘Out of myself’와 지나치게 밋밋한 드럼 머신이 긴장감을 무디게 하는 ‘My reminder’가 연속성마저 해치니, 스카이 페레이라의 피처링으로 흐트러진 기류를 휘어잡은 ‘Eyes of the world’만이 외따로 빛날 따름이다. 한 음반 속에서도 다양한 정서를 공존시켰던 그답지 않은 단조로움이다.


결국 한계를 깨지 못했으나 절정에 다다른 기량을 유지하기엔 손색없는 우회다. PC 뮤직의 종언 이후 사장될 듯했던 하이퍼팝이 완전히 메인스트림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한 장르의 부흥과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이 감행한 전환은 < Wuthering Heights >가 하나의 변곡점이 되리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존 궤도를 벗어나 성공을 거두었던 < Sucker >와 < Vroom Vroom >을 연상시키는 행보다. 그가 빚어낸 황량한 풍경과는 다르게 앞길이 어둡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록곡-

1. House (Feat. John Cale) [추천]

2. Wall of sound

3. Dying for you [추천]

4. Always everywhere [추천]

5. Chains of love

6. Out of myself

7. Open up

8. Seeing things

9. Altars

10. Eyes of the world (Feat. Sky Ferreira) [추천]

11. My reminder

12. Funny mouth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