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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vio
청하
2025

by 정기엽

2025.02.26

몸담은 자리는 변화를 야기할 만큼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소속사 이적 후 첫 음반인 < Alivio >는 제목처럼 “덜어낸” 욕심이 중점이다. 1집 < Querencia >에 담겼던 스물하나의 갈래길은 의지를 보이긴 충분했으나, 듣는 사람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반대로 이번 앨범은 정돈된 한 테마만을 남기고 나머지 좌표는 지우며 더욱 선명한 단일 작품을 내걸었다. 청하를 전혀 모르더라도 이별의 과정만 안다면 이 8곡을 이해할 수 있다.


이토록 친절한 작업을 만들기 위해 그간 강한 인상을 남기던 요소를 버렸다. ‘벌써 12시’, ‘Roller coaster’ 등 히트곡의 선 굵은 멜로디가 그것으로, 이 작법은 ‘Stay tonight’, ‘Sparkling’ 등 청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Stress’는 음색보다 비트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기존과 크게 다르다. 곡이 가진 속도감을 살리는 장치로서 가창 역시 도구로 기능한다. 레이블 모어비전에서 발매한 첫 싱글 ‘Eenie meenie’부터 찾아온 보컬보다 리듬 강조를 택하는 변화가 이어진 것. 고유성을 깎은 덕분에 청량을 벗어난 하우스로 장르의 범위를 넓혔다.


서두에 온 힘을 집중하는 여느 K팝 음반과 다른 노선으로 움직인다. 타이틀을 중후반에 배치한 결단은 트랙 순서대로 들었을 때 매력을 배가하는 좋은 전략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아직은 변신의 첫 단계인 터라 미비한 점 또한 있다. ‘Creepin’’과 ‘Loyal’은 무난한 알앤비 트랙으로 뒤에 다가올 하이라이트까지 청자를 이끌기엔 다소간 미흡한 곡들이다. 이 단점을 희석해 주는 ‘Salty’는 선미와 청하, 두 여성 솔로 대표주자의 만남을 성사해 내며 한껏 어두운 색의 아름다움을 설파한다. 적재적소에 초빙한 게스트가 앨범의 흐름을 정리하며 아쉬움을 상쇄했다.


톤을 유지하되 분위기를 반전하며 가장 빛나는 구간은 ‘Thanks for the memories’와 ‘Even steven (Happy ending)’이다. 전자는 또 하나의 타이틀로 그에 준하는 퀄리티를 갖추며 앨범에서 단연 돋보인다. 고수하던 댄스 음악을 내려놓고 팝 록을 취하며 ‘Stress’와는 다르게 고음과 리듬 운용을 탁월하게 이끌며 보컬 역량을 뽐낸다. 동작에 가려졌던 가창력을 선보이기에 최적의 무대를 찾은 셈. 후자는 청하의 작사로 전작의 ‘Crazy like you’와 동일한 단어를 차용해 같은 세계관을 구축, 다음 트랙과 분위기에 연결성을 주며 몰입을 돕는다.


3년 전 2집 < Bare&Rare Pt.1 >의 잃어버린 쌍둥이라 봐도 무방하다. 일정한 곡 수를 공유하며 유일한 여성 뮤지션 피처링, 작곡진들과의 연이은 협업 등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 그렇지만 계승한 점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답습으로 내통하진 않는다. 오히려 지난 시간을 모두 에워싸고 새 시작을 도모하는 진일보에 가깝다. 9년간 쌓아온 작법을 다수 버리고 택한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표피를 벗겨낸 곳에 혈이 아닌 새로운 광명(光明)이 흐른다.


-수록곡-

1. Creepin’

2. Salty (With. 선미) [추천]

3. Loyal

4. Stress [추천]

5. Beat of my heart

6. Even steven (Happy ending) [추천]

7. Thanks for the memories [추천]

8. Still a rose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