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델 레이의 음악은 젊은 소녀들에게 해롭다.
‘난 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I’m nothing without you)’라니.
- 2013년 인터뷰 中
19살 로드가 써내려간 멜로드라마는 사랑하는 이의 퇴장 이후를 다룬다. 어린 나이의 화자는 애인과의 이별이 가져다준 분노와 절망을 그대로 흡수한 상태. 그는 현실 도피를 위해 파티나 클럽 등 취할 수 있는 곳을 쏘다니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춤을 추며 환락을 쫓는다. 이로써는 도저히 공허함이 해결되지 않자 심연에 질식하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한다. 서사가 마지막에 다다르자 결국 염세로 귀결된 메시지를 던지며 막을 내린다. 보다시피 우울과 격정이 반복되는 그의 첫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충분히 경험하고 보았던 것들과 다를 바 없다.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는 골조 또한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극은 전형적인 서사에 살을 붙이는 작업에서 특별함을 획득한다. 감정의 이동에 대한 기록은 도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우선 그는 어렵지 않은 단어들을 선택하여 나이 또래인 10대를 대변하려고 한다. 떠나간 옛 애인을 되새기며 저주하는 과정에 과격한 표현들을 곁들이고, 자기비판적인 태도를 설익고 아릿한 언어들로 서술하여 성숙하지 않은 이성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충분히 그럴만함에도 ‘난 너 없으면 안 돼’나 ‘너를 통해 난 강해졌어’ 등의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어조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에, 극은 자기애에 대한 이야기로, 어린 나이의 그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로 읽히기도 한다. 조금만 비틀어보면 작품은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탁월한 각본에 중점을 둔 효율적인 연출법이 음반에 멋을 더한다. 로드를 포함한 음반의 프로듀서진은 전작 < Pure Heroine >의 음악적 기반이었던 일렉트로닉 팝에 갖은 디테일들을 심어 더욱 감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미니멀한 사운드 구성과 곳곳을 장식하는 엠버언트는 트랙 전반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 피아노로 자아낸 댄서블한 리듬에 캐치한 코러스로 풍성함을 더한 ‘Green light’를 시작으로, 덥과 글리치 사운드로 긴장감을 조성한 ‘Sober’, 먹먹하고 불안정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Homemade dynamite’는 심도 있는 사운드의 성취이다. 사운드의 높은 완성도는 불안을 견뎌내지 못해 결국 아스러지는 감정을 묘사한 ‘Hard feelings’나 하우스 음악을 트는 클럽에서 방황하는 화자를 연출한 ‘Supercut’ 등 이야기의 마지막 장까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된다.
쉽고 매력적인 멜로디는 작품을 상품으로 만든다. 전작에서 이미 검증된 로드의 작곡 능력은 펀(Fun), 블리쳐스(The Bleachers)의 리더인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을 만나 빛을 발한다. 다양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의 재량은 재치 넘치는 후렴구가 소구력을 획득한 ‘Homemade dynamite’과 ‘The Lourve’, 디즈니 풍 발라드 ‘Liability’, 보컬 EDM의 트렌디함을 갖춘 ‘Supercut’ 등, 음반 전반에서 묘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그러나 어느 하나 부각되거나 뒤처지지 않는다. 각기 다른 매력을 장착한 트랙들은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일정한 연속성을 유지하고, 단단하고 고혹적인 음성의 로드 또한 가수 그리고 연기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Royals’는 한마디로 ‘팩트 폭력’이었다. 그는 스타에 대한 10대들의 환상을 무참히 짓밟으려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Royals’로 한순간에 스타가 됐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도 현실을 끊임없이 직시하며 예쁘장한 스타들과 유쾌한 TV쇼들이 화려하게 채색한 거짓 현실을 깨려고 한다. < Melodrama >에서의 그는 청소년들이 사는 세상을 너저분하게 그려내며 청소년기의 시름과 고뇌는 불가피한 것이라 말한다. ‘왠지 나만 우울한 것 같다’는 어린 10대들의 망상은 분명 해롭다. 그렇기에 그가 말한 대로 ‘난 너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노래하는 라나 델 레이보다, ‘내 전 남자친구들의 리스트는 길어’라며 현혹하는 테일러 스위프트보다, 거짓꾸밈 없는 < Melodrama >가 자라나는 10대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물론, 내용이 조금은 문란하지만 말이다.
-수록곡-
1. Green light [추천]
2. Sober [추천]
3. Homemade Dynamite [추천]
4. The Lourve [추천]
5. Liability [추천]
6. Hard Feelings / Loveless [추천]
7. Sober II (Melodrama)
8. Writers in the dark
9. Supercut [추천]
10. Liability (Reprise)
11. Perfect place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