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Celebration Days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2012

by 신현태

2013.01.01

“우리는 존 본햄을 위해 레드 제플린을 해산합니다.”

1980년 9월 25일 존 본햄의 사망 직후 레드 제플린은 해체 성명을 발표했고 밴드의 이름은 영원히 전설로만 남겨질 것 같았다. 30여 년간 수도 없는 공연 요청과 재결합 제의를 뿌리친 그들은 아틀랜틱 레코드의 창시자 아흐메트 에르테군(Ahmet Ertegun)에 대한 추모를 위해, 그리고 그의 장학 재단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 기획된 무대 위에 섰다. 해체 27년 만인 2007년 12월 10일, 새로운 전설은 O2 아레나에서 < Celebration Days >라는 이름으로 다시 쓰였다. (존 본햄의 사후에 3인이 레드 제플린의 이름으로 무대에 선 것은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와 1988년 '애틀랜틱 레코드 창립 40주년 기념 콘서트', 199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 무대가 전부였다.)

추첨을 통해 이루어진 티켓 판매는 세계 각지에서 웹사이트에 등록한 100만 명의 응모자 중 8,000명에게 2장씩의 티켓 구입자격이 주어졌다. 1분마다 8만여 명의 팬들이 티켓팅을 위해 접속했다고 한다. 이는 '단일 음악 공연으로서 가장 높은 티켓 수요'로 기록되어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나돌았을 당시 이 콘서트를 볼 수 있다면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으니 과거와 현재를 잇는 레드 제플린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앨범, 혹은 영상을 보기 전 미리 일러두고 싶은 것이 있다. (CD와 DVD, Blu-ray로 발매되었지만, 음원보다 라이브 영상을 먼저 보길 권한다.) 멤버들은 이미 환갑도 한참 지난 할아버지들이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출시가 늦은 이유에 대해 “공연 후 2년쯤이 지나 영상을 봤는데 그때도 살짝 보고 도망갔다. 화려했던 과거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됐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물론이다. 어찌 전성기에 버금가는 라이브가 가능하겠는가. 하물며 30여 년 동안 단 한 곡의 신곡도 없었던 밴드니 오죽하랴. 하지만 오랜 침묵을 깨는 그들의 무대는 관객과 음악 매체로부터 완벽한 라이브 퍼포먼스였다는 칭송을 받았다.

데뷔 작품 < Led Zeppelin >의 머리 곡 'Good times bad times'로 대망의 공연은 시작된다. 패기 넘쳤던 멤버들은 모두가 60대가 되었고, 드럼 스틱을 잡았던 존 본햄의 자리는 아들인 제이슨 본햄(Jason Bonham)이 앉았다. 달라진 것은 그것뿐이었다. 기본 록 구조의 틀을 허물었다는 평가의 'Black dog'는 뇌리를 찌르는 리프와 정교한 리듬감으로 곡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로버트 플랜트와 관객이 함께 주고받는 후렴구는 라이브의 묘미로 살아났으며, 특히 제이슨의 육중한 리듬 백킹은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기에 충분하다. 니힐리즘의 정취를 담아낸 'In my time of dying'의 묵직한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선율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는 지미 페이지의 기타 액션, 서로 간에 눈짓과 손짓으로 호흡을 맞추어가는 모습은 역시 또 하나의 볼거리다.

1935년 녹음된 델타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Roboert Johnson)의 'Terraplane blues'를 언급한 레드 제플린 식의 재해석 곡 'Trampled under foot'은 펑키 블루스의 경쾌함이 일품이다. 건반 위에 앉은 멀티 플레이어 존 폴 존스와 쾌조의 솔로잉을 들려주는 지미 페이지의 호흡은 곡의 하이라이트다. 매 라이브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했다는 'Dazed and confused'의 광란적 사이키델릭은 곡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빠질 수 없는 활 연주와 피드백의 절묘한 공간감 창출은 경탄을 자아내는 명연이다. 지미 페이지의 상징 중 하나인 깁슨 'EDS-1275' 더블넥 기타는 'Stairway to heaven'을 위한 주 무기다. 특별한 기교 없는 주법 안에서의 다채로운 사운드, 로버트 플랜트의 차분함과 격렬함이 공존하는 기승전결의 구성미는 '하드록의 예술성'을 최고조로 이끌어 낸다.

비영미권 음악에 대한 경외와 탐미를 담은 'Kashmir'는 록이라는 기본 골격에 인도와 중동음악 요소의 배합이 핵심이다. 오케스트레이션에 덧입은 멜로트론과 디스토션 기타의 조화는 그들의 음악적 성취의 극치이자, 멀티 장르적 종합예술의 대서사시를 완성한다. 앙코르로 이어지는 'Whole lotta love'는 원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우주적 사운드의 공명을 더해 공연 막바지의 흥분을 최고조로 이르게 한다. 록 밴드 지망생의 연주 교본이자 필수 코스 'Rock and roll'은 그들의 리듬이 '록 비트의 알파와 오메가'라 불리는 이유를 실증한다. 중독성의 굉음과 완전연소의 카타르시스는 레드 제플린의 뿌리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눈시울을 적시며 팬들의 박수에 화답하는 제이슨 본햄과 멤버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다.

레드 제플린은 자연스러운 조화를 통해 열정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시켰다. 퍼포먼스 자체만 따지더라도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지만, 앨범과 영상의 완성도를 위한 밴드와 레이블의 노력이 드러난다는 점 또한 찬사 받아 마땅하다. 생생한 음향은 물론이거니와 역동적인 무대 위 모습과 관객을 잇는 움직임을 동시에 담아낸 편집은 작품의 소장 가치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레드 제플린의 이름을 내건 완전한 형태의 콘서트를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우리가 한때 전성기의 시절을 보낸 건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끝났다.”며 세월의 흐름을 여유로이 받아들였다. 날카로운 고음을 내뿜었던 그의 음역은 낮아졌고, 섹슈얼한 야성미가 넘쳤던 모습은 주름 깊고 후덕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오컬트 신화에 나올법한 미소년 외모의 지미 페이지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듣는 사람의 가슴 밑바닥을 긁어놓았던 기타 연주의 매끄러운 맛 또한 무뎌졌다. 든든한 버팀목으로 상냥한 미소를 머금었던 존 폴 존스 역시 세월 앞에 주름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피할 수 없는 변화 역시 깊고도 넓은 레드 제플린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표출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축하의 날'(Celebration day)이란 밴드의 마지막 노래는(Swan song) 마치 앙코르처럼 화려한 종결부(Coda)로 마무리되었다.

-수록곡-
CD 1
1. Good times bad times [추천]
2. Ramble on
3. Black dog [추천]
4. In my time of dying [추천]
5. For your life
6. Trampled under foot [추천]
7. Nobody's fault but mine
8. No quarter

CD 2
1. Since I've been loving you
2. Dazed and confused [추천]
3. Stairway to heaven [추천]
4. The song remains the same
5. Misty mountain top
6. Kashmir [추천]
7. Whole lotta love [추천]
8. Rock and Roll [추천]
신현태(rocker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