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설, 록 미학의 역사적 방점
레드 제플린의 현재 위상이 어떠한가는 얼마 전 11월26일(12월10일로 연기) 영국 런던 재결합 무대를 갖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1분마다 8만 명의 팬들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콘서트 공식 웹사이트에 등록한 살인적인 광풍이 말해준다. 활동 당대인 1970년대에 레드 제플린을 들었던 사람이건, 이후에 음악만을 접했던 사람들이건, 무조건 레드 제플린 공연 관람은 당연한 의무이자 부푼 기대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1980년 파워 드러밍의 천재 존 보냄(John Bonham)이 알코올 중독사하자 레드 제플린의 나머지 세 멤버 지미 페이지(Jimmy Page, 기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보컬),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베이스 건반)는 지체 없이 해산을 선언했다. 다른 스타그룹 같으면 대체 멤버를 구해서라도 명맥을 유지했을 테지만 “존 보냄 없는 레드 제플린은 없다!”며 활동의 종지부를 찍은 게 록 팬들에게는 뜨거운 동료애와 절도로 비쳐지면서 그들의 신화는 휴먼 터치까지 더해졌다.
물론 인간다움과 의리 때문에 팬들이 그들을 신화로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불후의 음악, 록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스타일을 정복한 '멀티 록뮤직', 바로 그것이었다. 아직도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하드 록 혹은 헤비메탈 밴드로 규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10장 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정규 앨범을 제대로 듣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우선 '레드 제플린은 헤비메탈 그룹'이라는 정의의 협소와 도식성에서 벗겨줘야 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것으로는 사실상 최초의 모음집이라고 할 이번 베스트 < Mothership >에 수록된 'Communication breakdown', 'Immigrant song' 그리고 69년 발표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올라 그들의 존재를 대중적으로 알린 기념비적인 곡 'Whole lotta love'은 헤비메탈의 형식미를 고스란히 선사하고 있다. 디스토션과 노이즈를 기본으로 한 거친 하드 록을 정돈시키고 다대한 음악적 변화를 심는 예술성을 부여하면서 헤비메탈의 틀을 완성한 것이다.
이들은 헤비메탈을 하더라도 자신들의 음악적 시작점인 블루스에 늘 원대복귀하곤 했음을 'Babe I'm gonna leave you'나 'Since I've been loving you' 그리고 'When the levee breaks'가 웅변한다. 레드 제플린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1960년대 말 영미 음악계에 불어 닥친 '블루스 리바이벌'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성 사운드에의 욕구로 헤비메탈이 주조되었음을 가장 실감나게 증명한 존재라는데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블루스와 헤비메탈의 기원적 연관성을 차치하고라도 이들이 인도음악의 내음이 물씬한 'Kashmir'나 레게를 차용한 'D'yer m'aker'(최근 어린 숀 킹스턴이 'Me love'에서 이 곡을 샘플링했다)를 내놓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블루스와 헤비메탈의 울타리 내에서 모든 장르적 요소의 접목을 화학 실험했던 것이다. 장르에 대한 정복자인 셈이다.
레드 제플린은 1960년대 말 야드버즈(Yardbirds) 후기를 지휘하던 지미 페이지에 의해 '뉴 야드버즈'에서 새롭게 비행선으로 탈바꿈한 그룹이다. 당대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떨치던 그는 모던 블루스의 형식을 가다듬어 거기에 굉음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가하고자 한 광대한 음악욕구의 소유자였다. 그의 의지에 역시 잘나가던 세션맨인 존 폴 존스가 동의를 표하고, 이후 그때까지만 해도 언더그라운드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던 샤우터 로버트 플랜트와 그의 친구 존 보냄을 과감하게 끌어들이면서 이제는 신화가 된 완벽한 팀워크가 형성된다.
1969년에 발표한 첫 앨범 < Led Zeppelin >은 엄청난 충격파를 불렀다. 속지를 쓴 평론가 데이비드 프릭의 표현대로 이 작품은 시류와 재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개인의 역사와 집합적 열정을 새롭고 큰 음악으로 연결시킨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사실상 모든 승부가 여기서 끝났다. 초기 블루스와 남부 블루스, 체스와 선 어틀랜틱 레이블이 추구하던 모던 블루스, 영국 포크의 르네상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사이키델릭 요소들의 총화라고 할 그들의 경이적 '하이브리드' 음악에 견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해 연말에 내놓은 < Led Zeppelin Ⅱ >에서는 상기한대로 'Whole lotta love'가 싱글 대박을 치면서 마침내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으며 제목이 없는 1971년 네 번째 앨범 흔히 '언타이틀드' 혹은 '조소(Zoso)'로 통하는 앨범에 와서는 'Black dog' 'Rock and roll' 그리고 불후의 록 클래식으로 숭앙되는 'Stairway to heaven' 같은 곡들이 연이어 전파를 잠식하면서 당대의 살아있는 전설로 솟구쳐 올랐다.
북미와 세계 순회공연에서 잇단 집객 신기록을 작성하던 1975년 무렵 이들의 인기는 헤비메탈의 사각 층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에게까지 어필해 TV 토크 프로그램에서 당시 제럴드 포드대통령의 두 딸은 가장 좋아하는 그룹으로 레드 제플린을 거명했을 정도였다. 헤비메탈이 백악관에도 울려 퍼진 것이다. 이 무렵 앨범 < Physical Graffiti >를 두고 혹자는 그들의 최고 앨범으로 꼽기도 하며 이후 1976년 < Presence >와 같은 해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 실황을 담은 영화의 OST < The Song Remains The Same >에 이르기까지 레드 제플린의 위풍당당과 질풍노도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직후 젊은 펑크(Punk)의 아우성이 영국사회를 강타하면서 지극히 엘리트적인 이들의 록은 공격대상에 올랐고 3년간의 공백이 이어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들은 1979년, 펑크의 최소주의에 충고라도 하듯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대폭 강화한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 < In Through The Out Door >를 발표해 다시 한 번 그룹의 슈퍼파워를 과시했다.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가리켜 흔히 곡 하나하나가 심포니와 같다고 한다. 강하면서 후련한 클라이맥스 대목이 말해주듯 기승전결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록은 레드 제플린의 없었다면 진화에 더 많은 세월을 요했을 것이다. 그 발전과 지평확대를 가져온 동력은 말할 것도 없이 네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악기연주력과 잔인할 만큼 부단한 공연을 통해 다져진 하모니다. 당연히 밴드지망생들은 이들의 연주를 따라하고 흉내 내야 했고, 후대에 록 연주의 교본 혹은 교과서처럼 취급되었다. 영원한 밴드의 로망! 지금도 레드 제플린은 실로 모든 록 팬들과 연주자들의 내공을 재단하는 준거인 동시에 정점(頂點)이 되고 있다. 디스크자키 전영혁씨는 평론가로 활동할 당시, 이것을 “현대의 로큰롤은 비틀스로 시작해서 레드 제플린으로 완성되었다!”는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
이번의 베스트 < Mothership >은 유작인 1982년의 < Coda >를 제외한 9장의 앨범에서 보석만을 골라 엮은 소중한 합집이다. 리마스터링된 24곡의 명곡들이 CD 2장에 채워졌다. 록과 헤비메탈 아니 대중음악의 정체성이 여기 있다는 말 외에 다른 수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왜 정통파 로커들이나 얼터너티브 로커들이나 한 결 같이 레드 제플린의 사슬에 묶여 쉬 풀려나지 못하는 이유를 수록곡들은 생생히 설명해준다. 어쩌면 'Kashmir' 한곡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박스세트 말고 이전의 베스트는 사실상 LP의 복각이고 설령 디지털 리마스터링 앨범이라고 해도 수록곡 수적으로 충분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소중한 앨범이다. 다시 들으며 생각하는 것이지만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존 보냄의 연주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노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이 유려하다. 이런 음악을 당대에 들은 기성세대들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30년 가까이 흘러 이보다 나은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는 후대사람들이 느끼는 경이와 환희도 만만치 않다.
-수록곡-
1. Good times, bad times
2. Communication breakdown
3. Dazed and confused
4. Babe I'm gonna leave you
5. Whole lotta love
6. Ramble on
7. Heartbreaker
8. Immigrant song
9. Since I've been loving you
10. Rock and roll
11. Black dog
12. When the levee breaks
13. Stairway to heaven
14. The song remains the same
15. Over the hills and far away
16. D'Yer mak'er
17. No quarter
18. Trampled under foot
19. Houses of the holy
20. Kashmir
21. Nobody's fault but mine
22. Achilles last stand
23. In the evening
24. All m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