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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ia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
2012

by 신현태

2012.08.01

팝 음악 사에서 천재들은 많았다. 한순간 반짝이는 재능이 아닌 진정한 '난 인물'들은 한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고는 한다. 1970년대의 펑크록을 모태로 이어온 얼터너티브라는 큰 궤에서 커트 코베인은 가장 높은 위치의 존재였고, 빌리 코건은 그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범접 불능의 찬란한 재능을 지닌 이였기에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샘한 살리에리처럼 그 누구의 것도 부러워하거나 탐하지 않았다.

“나는 괴물처럼 행동했고, 그 괴물은 내 개성이었다.”

빌리 코건은 '팀의 두뇌'이자 '철저한 독재자'다. 순전히 자신만의 잣대로 구성원은 물론 음악의 방향성에 이르기까지 밴드의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스매싱 펌프킨즈라는 하나의 집단은 순전히 그의 소유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다. "나머지 멤버들이 나의 음악을 따라주지 않는다"식의 당시의 인터뷰들은 순전히 불만 토로의 장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이런 독단의 결과로 갈등과 내분은 필연처럼 이어졌다. 결국 밴드는 존폐 위기에 몰렸고 좌초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닥치고 만다.

해체 이후에도 코건은 멈춰있지만은 않았다. 빛나는 아트워크와 뿜어져 나오는 창작력의 발로는 새로운 프로젝트 즈완(Zwan)의 결성과 솔로 활동을 통해 해소했다. 하지만 호박들의 주축이었던 제임스 이하(James Iha)와 디'아시(D'Arcy)가 팀을 떠난 후 이렇다 할 음악적 성취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해체 7년 만인 2007년 < Zeitgiest >라는 앨범 타이틀과 스매싱 펌프킨즈의 이름으로 재결성을 알린다. 절치부심한 복귀 작품은 한 시대를 풍미한 '얼터너티브의 선봉장'이었던 황금시대를 다시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트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호의적이지 못한 팬들과 평단의 냉대와 마주하게 된다. 철모르게 술과 마약, 섹스를 즐기던 당시 1990년대의 X세대 동반자들은 이제 한 가정을 꾸렸다. 시간이 너무도 지나버렸다는 말이다. 이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이라 기보다는 철 지난 '시대정신'과의 부조화였으리라.

복귀 작품의 작업을 함께한 유일한 원년 멤버 지미 체임벌린(Jimmy Chamberlin) 마저 이제는 더 이상 그의 동료가 아니다. 시작을 함께한 모두가 팀을 떠난 지금이다. 데뷔 작품 < Gish >가 세상에 나온 지 21년이 지난 지금, 당면 과제는 '밴드의 재건'이었다. 하여 코건은 타로 카트 'The Fool's Journey'에 영감을 얻어 무려 44곡의 싱글을 발표하는 대형 프로젝트 < Teargarden By Kaleidyscope >작업에 착수했다. 예정대로 신곡들은 매달 온라인으로 무료 배포되었고, 2012년 대망의 < Oceania >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밴드가 더욱 단단해졌음을 헤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예상대로 첫 번째 트랙 'Quasar'에서부터 피치를 잔뜩 올려놓는다. 태양계의 행성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작품 속으로 투영하고자 했고 신과 크리슈나, 마가를 불러들이기까지 한다. 단단하고 빽빽이 차있는 기타 리프와 파워 넘치는 드러밍은 곡의 완강한 기세를 뿜어낸다. 'The celestials'는 어쿠스틱과 분위기를 끌어내다가 이에 대조되는 드라이브 사운드 기타의 어슷한 조화는 진행 전환의 묘미를 훌륭히 살려냈다.

앨범 동명 타이틀 트랙 'Oceania'의 전개는 대 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와 윙스의 'Band on the run'과 마찬가지로 한 작품 속에서 다중 작품이 공존하는 큰 틀을 가지고 있다. 9분이라는 러닝타임의 3부작 구성은 새로운 도약을 이루고자 하는 그들의 최대 야심작이다. 'My love is winter'와 'Pale horse', 'Pinwheels'같은 곡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특유의 멜랑콜리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The chimera'와 'Inkless'는 < Siamese Dream >의 초기 작품들의 감성들이 전해진다. 더는 신경질적이지도 않고 거창한 연주와 웅장한 편곡에 목메어있지 않지만 깊이 있는 숙연함이 묻어난다.

하나의 유기체와도 같은 공동의 밴드 사운드에서 자신만의 음악에 대한 전념을 위해 타인을 무참히 짓밟고 무시한다. 보통의 자신감으로는 불가능한 철면피한 독단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자면 역기능보다는 오히려 순기능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을 향한 숱한 찬사의 시발점이 바로 빌리 코건임에 반문을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쯤 하면 미워할 수만은 없는 '위대한 압제자'라 할만하다.

'이미지와 스타일'이 한 뮤지션의 음악성으로 대변되고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록 스피릿'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시류에서 이들은 성장과 완성도를 논할 여지가 없는 밴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심오하며 깊이 있는 이야기로 록의 정통성을 고수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시대의 정신이 사라진 요즘에도 세상은 스매싱 펌프킨즈에게 로큰롤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그 온당한 요구에 충분한 답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순간 불타 없어지기보다 이렇듯 천천히 불타올라 서서히 식어가길 바란다.

-수록곡-
01. Quasar [추천]
02. Panopticon
03. The celestials [추천]
04. Violet rays
05. My love is winter [추천]
06. One diamond, one heart
07. Pinwheels [추천]
08. Oceania [추천]
09. Pale horse [추천]
10. The chimera [추천]
11. Glissandra
12. Inkless [추천]
13. Wildflower
신현태(rocker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