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훈 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들이 새천년에 들어서 유독 맥을 못 추는 와중에 얼터너티브의 거성 스매싱 펌킨스의 컴백은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그것도 초창기의 메탈 기운을 듬뿍 머금은 독거미의 형상으로 말이다. 어쩐지 중간급 고참의 기백이 느껴지기 보다는 최후의 기력을 다 끌어 모아 발산하는 것처럼 들려 안쓰럽기도 하지만, 전설로 박제되지 않은 현재의 영웅이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김태형 신보 < Zeitgeist >는 호박들의 부드러운 면이었던 드림 팝의 요소보다 어둡고 공격적인 면인 헤비메탈이 더욱 강조되었다. 몇 겹으로 덧씌워져 두꺼운 층을 이루는 기타 리프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처럼 무겁게 가라 앉아있고, 지미 챔벌린의 날아다니는 드러밍은 정말이지 존 보냄(John Bonham)의 재림처럼 환상적이다. 개인적으론 데뷔작 < Gish > 이후 가장 맘에 든다. 외지에서의 평은 삭막하기 그지없는데, 아직까지도 다아시(D’Arcy)와 제임스 이하(James Iha)의 공백에 아쉬움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빌리의 독재 성향이 그룹을 말아먹은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더욱 시니컬해진 빌리의 코맹맹이 보컬은, 천재의 독단보단 차라리 시시한 민주주의가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들 정도로 사람을 짜증나게 할 때도 있지만(’Stars’, ’United States’), 역시나 빌리 코건이 가진 높은 잠재력은 ’Tarantula’를 비롯한 각각의 곡 그 자체에 담겨진 팝뮤직으로서의 확고한 힘으로 표현되고 있다.
박효재 사운드 메이킹의 핵심인 빌리 코건과 지미 챔벌린은 그대로이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의 불길한 곡조와 박력 있는 드럼의 묘한 앙상블은 여전하지만 제임스 이하와 다아시의 부재를 극복하진 못하고 있다. 제임스 이하의 몽환적인 기타 터치와 다아시의 느긋한 베이스 라인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스매싱 펌킨스라는 이름으로 돌아와준 것은 반갑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프레임은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내용물들이 달라졌고 그것들의 결합 또한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얼터너티브 아트 록의 창시자라는 위대한 타이틀은 잃어버린 조각(제임스 이하, 다아시)의 귀환 없이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