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포화상태에 이른 아이돌 시장에 4세대 걸그룹 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이들의 캐치프라이즈는 바로 '에스이에스(SES), 핑클 Ver.2.0'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낯선 이름이 되어버린 1세대 하이틴 스타들의 이미지를 이용해 새로움 없이도 신선함을 자아내려는 역발상이다. 지극히 '소녀'다운 캐릭터와 내츄럴한 스타일링을 내세웠던 데뷔곡 '몰라요'는 이 노림수의 효과를 증명하듯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다. 머리를 맞대고 세웠던 틈새시장 공략의 노고를 어느 정도 돌려받은 셈이다.
우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변화무쌍한 신사동호랭이의 음악적 능력이다. 그저 아이돌 작곡가로 여겨졌던 그는 티아라의 'Roly-poly'를 통해 레트로를, 비스트의 'Fiction'을 통해 슬로우 템포를, 시크릿의 'Magic'을 통해 리얼세션과의 합작을 시도하며 천차만별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 스펙트럼을 아낌없이 풀어놓으며 1990년대의 향수를 완벽히 재현시켰다. 다소 한계에 다다른 듯한 타 프로듀서들과의 경계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만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만다. 프로듀서의 음악적 역량과는 별개로 러닝타임 전체가 그저 '충실한 재현'에만 그친 탓이다. 물론 'My my'는 그 시절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자극 위주의 트렌드를 벗어나 오래 불릴만한 댄스튠을 만들겠다는 의도에 잘 부합하고 있다. 다만 대중들이 'I'm your girl'을 떠올리며 유사성을 부여하는 순간 흥미가 반감된다는 것이 문제다. 진부라는 두 글자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오마쥬는 전반에 걸쳐있다. 타이틀곡으로 경합을 벌였을 듯한 'Prince'의 스토리 텔링 식 가사는 젝스키스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꼭 닮아 있고, 다른 수록곡들도 만만찮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물론 그것이 전략의 포인트였겠지만, 옛 유산으로 신인그룹만의 매력을 만들어내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적어도 이 앨범 내에서만큼은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룹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그 색깔이나 외양이 과도하게 수수하고 옅다.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본 뒤 그것이 좋았다면 그 관심이 멤버 개개인으로 이어져야 정상인데, 안타깝게도 그 호감은 익숙함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지고 만다. 물론 지금의 10대들에게는 반전의 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그 외의 대중들에게는(특히나 2,30대에게는) 단지 추억팔이로 보일 가능성 또한 짙기에 일장일단의 평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조심스레 안착한 4세대 걸그룹의 선두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아이돌 신 확장에 종언을 고하게 될지. 타임머신을 탄 듯한 이 '1세대 같은 4세대'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뫼비우스의 띠를 완성하기 위한 모험 속을 표류하고 있다.
-수록곡-
1. He's my baby
2. My my [추천]
3. Yeah
4. 꿈결처럼
5. Pri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