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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2011

by 이종민

2011.06.01

아직은 덜 완성된 장기하 창법

전작보다 반응이 뜨겁진 못하다. 초반 음반 판매와 공연에 대한 관심이 섭섭지 않지만, 장기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 채 딱 거기까지다. 인디 신 안에선 이 정도도 부러워할 만한 수치일 수 있으나, 과거보다 주류 매체의 홍보 의존도를 더 높였음에도 신드롬에 가까웠던 밴드의 열풍이 이번 앨범에서 재현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인디에선 주류', '주류에선 인디'라는 모순적 위상이 가져다주는 특혜는 충분히 누린다고 할 수 있다.

한 명의 건반 주자를 영입해 5인조로 새롭게 구축한 라인업은 흥행에서 쉽게 안전성을 보장받지 않는다. 그것은 < 별일 없이 산다 >(2009)에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미 시스터즈'란 시각적 장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보컬의 어수룩한 말투와 낯선 가사들을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발산시켰던 복고 춤이 사라졌으니 재미와 자극이 반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덕분에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편곡의 완성미는 좋아졌다. '뭘 그렇게 놀래',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깊은 밤 전화번호부'에서의 합주는 반복청취의 매력이 쉽게 들지 않았던 예전과 비교해 다시금 트랙을 찾게 하는 연주들이다. 편곡에 멤버 모두가 참여했고, 김창완 밴드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며 매진한 복고 소리 탐구의 결실이 어느 정도 맺어졌다.

핵심은 창법이다. 발전된 사운드에 비해 장기하는 여전히 그만의 건조한 어투로 노래를 부른다. 싱잉(Singing)과 리딩(Reading)이란 지점에서 후자를 택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완전히 전자를 버리지 못해 어설프게 타협하려 한다. 물론 정확한 발음으로 딱딱 끊어 읽는 표현이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볼 순 없다. 보컬이 가진 개성이나 독특한 수법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

문제는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에서 그것이 매번 어울리느냐는 것이다. '뭘 그렇게 놀래', '그렇고 그런 사이' 같은 곡에선 들어맞지만,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그 때 그 노래', '마냥 걷는다'에선 어색하다. 늘려야 할 곳에서도 끊어버리는 부조화가 나타나니 곡의 분위기가 살 수 없다.

리쌍의 곡으로도 익히 알려진 '우리 지금 만나'의 밴드 버전도 그렇다. 게리 파트에 들어간 보컬은 랩보다 더 메말라있다. 랩 플로우의 저력, 동시에 길의 감초 같은 싱잉이 곡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가져다줬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트랙이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이런 어정쩡한 모습은 자주 보이게 된다. 밴드가 갖는 방향은 확실하나, 노래 부르는 방법에서 제대로 된 타협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할까. 장기하식 창법은 그를 인식하기엔 충분하나, 곡을 살리는 쪽에선 아직까지 부족해 보인다. 대중들이 그로부터 얻는 것도 재미이고 스스로의 캐치프레이즈인 '지속적인 딴따라질'을 가져다줄 동력 또한 재미임을 전제할 때 갈수록 재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러한 창법은 본질적 위험의 소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완벽한 음악이란 것이 있을 순 없으나, 최소 어울리는 틀은 갖춰놔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도 이렇게 나간다면 지지 세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될 것이고, 그저 소규모 팬덤을 유지한 채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는 그냥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밴드'로 끝날 것이다. 장기하 음악에는 가수가 필요하다.

-수록곡-
1. 뭘 그렇게 놀래 [추천]
2. 그렇고 그런 사이
3.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추천]
4. TV를 봤네
5.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추천]
6. 깊은 밤 전화번호부
7. 우리 지금 만나
8. 그 때 그 노래
9. 마냥 걷는다
10.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11. TV를 봤네 (다시)

전곡 작사, 작곡: 장기하
이종민(1stplane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