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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장기하와 얼굴들
2009

by 임진모

2009.03.01

음악을 접근함에 있어서 자극을 택하는 것은 당장의 화제 획득에는 효과적이지만 미래를 기약해주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개별적 움직임이었겠지만 어느덧 비주류와 인디의 희망과 미래로까지 거론되면서 파급의 몸집이 불어난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이 그러하다.

먼저 수록곡 '아무 것도 없잖어'의 경우 장기하의 노래는 싱잉(singing)이 아니라 리딩(reading)으로 들린다. 비주류 음악에 온전한 호흡을 찾는 사람들 중 다수가 그에게 맛보는 '재미'가 여기서 비롯할 것이다. 노래하기의 재래식을 깨는 새 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변칙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마치 읽기와도 같아서 발음의 정확성은 인정하나 대중음악의 미학은 결코 그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다른 곡 '오늘도 무사히'나 '말하러 가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에서 비트를 따라가며 음과 가사를 맞추는 그만의 노래방식은 특이하지만 아슬아슬하다. 역시 변칙적이다. 그의 접근 포인트는 명백히 '자극'에 위치한다. 하지만 느낌은 가벼워서 어떤 스타일의 대중음악이라도 기본처럼 제공해주어야 할 쾌감과 시원함이 부족하다. 마지막 곡 '별일 없이 산다'는 모처럼 밴드 록의 울림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포장했지만 마찬가지로 노래 때문에 맥이 빠진다.

가사 때문에 지향을 그렇게 정했는지도 모르지만 '나를 받아주오'의 경우는 노래이기 전에 오래전에 유통된 '만담'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정규 앨범 전에 대중적 호응을 쾌척한 '싸구려 커피'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이미 확인된 바다. 고감도 가사를 들려준 산울림을 떠올리는 듯해서 '산울림의 재현'이라는 일각의 시선이 있는 줄 알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산울림은 조용한 템포였더라도 통쾌하거나 깊은 울림이 있었지만 장기하의 노래는 시종일관 살짝 건드림에 머문다. 반복 청취하면 감질날 수도 있다.

신보를 통해 접하는 어떤 곡도 '싸구려 커피' 이상의 귀에 감기는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나 '나를 받아주오' 등의 편곡에서 보이는 수준급 센스나 곡 구성 그리고 신(新)빈곤층의 쓰디쓴 경제현실을 반영한 노랫말은 인상적이지만 앨범의 견인력은 독특함, 거기서 그치고 만다. 만담과 유머에 상당 부분 매몰되어 있다.

위대한 음악을 판가름하는 것은 음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비음악적 혹은 사회적 환경이지만 그것이 음악적이냐 아니냐는 음악적 기준에 따른다고 본다. 자극과 변칙을 통해 일시적으로 올라설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오래 축적된 음악적 미학이 홀대되면 생명력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이라면 다음 앨범에서도 대중(아니라면 소중)의 환호가 계속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비주류 가수나 밴드가 앨범을 듣고 '나도 이런 신선한 음악을 해야겠다'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뜨는 건가' 하고 회의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장기하의 도약이지 인디의 도약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를 인디의 정체성과 미래로 결부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수록곡-
1. 나와
2. 아무 것도 없잖어
3. 오늘도 무사히 [추천]
4. 정말 없었는지
5.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
6. 말하러 가는 길
7. 나를 받아주오
8. 그 남자 왜
9. 멱살 한번 잡히십시다
10. 싸구려 커피
11. 달이 차오른다, 가자 [추천]
12. 느리게 걷자
13. 별일 없이 산다 [추천]
전곡 작사 작곡 편곡: 장기하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