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 최전성기의 산물'
2010년 그래미 어워드는 6관왕을 차지한 흑진주 비욘세만을 위한 잔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헤비메탈 애호가라면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리스트 롭 헬포드(Rob Halford)가 스킨헤드와 가죽 재킷 차림으로 그룹을 대표해 헤비메탈 /하드록 퍼포먼스 상을 받은 장면에 감격했을 것이다. '메탈 신(神)'으로 불리며 42년간 활동해온 헤비메탈의 전설이 드디어 그래미를 거머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이 영국 메탈의 산증인에게 첫 그래미 상을 안겨 준 곡은 2009년에 공개한 실황 음반 < A Touch of Evil: Live >에 수록된 'Dissident aggressor'였다. 그러나 1977년에 발표한 고작 3분 4초짜리 곡의 실황연주로 이들이 상을 받았다고 믿은 헤비메탈 팬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1969년부터 40여 년간 헤비메탈을 알리고 지켜온 이들의 업적에 대한 공로상이었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배출한 고른 품질로 생산된 15장의 '영국산 강철' 중 어떤 앨범을 명반으로 꼽을 수 있을까. 물론 'breaking the law'와 함께 브리티시 헤비 메탈 시대를 열어젖힌 < British Steel >(1980), 대중성과 견실한 사운드의 조화로 이들의 앨범 중 베스트 셀링을 기록한 < Screaming For Vengeance >(1982), 노익장을 과시하며 가장 스피디한 사운드를 선사해 깜짝 놀라게 했던 < Painkiller >(1990)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그러나 헤비메탈 황금기를 꿰고 있는 메탈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음반은 따로 있다. '주다스 사운드'라고 할만큼 완전한 정체성을 담고 있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과 빈틈없는 강철 사운드가 완전히 정점에 올라있음을 과시한 앨범, 바로 < Defenders Of The Faith >이다. '신념(헤비메탈에 대한)의 수호자'라는 의미심장한 타이틀, 앨범 재킷에 '메탈리언'(양의 뿔과 호랑이의 외형을 갖춘 무시무시한 모습을 가진)을 등장시킨 상징성도 주목할 만하다.
앨범은 신념에 걸맞은 사운드로 가득하다. 롭 헬포드의 특유의 표효하는 듯한 샤우팅, KK 다우닝(K.K. Downing)과 글렌 팁튼(Glenn Tipton)의 광포함속에서 아파테이아를 찾는 트윈 기타 시스템과 드라이브 감 넘치는 이언 힐(Ian Hill)의 베이스, 여기에 < British Steel >부터 호흡을 맞춰온 이래로 완전히 팀웍에 녹아든 데이브 홀란드(Dave Holland)의 적확한 드럼 사운드가 불을 뿜는다.
무엇보다 한 곡도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앨범 전체에 배치되었다. 질주하는 셔플 리프와 저돌적인 드럼 비트가 레이싱 카를 탄 것 같은 쾌감을 전달하는 'Freewheel burning'(롭 헬포드의 래핑까지 곁들여 한층 탁월한 속도감을 내는), 다우닝(그동안 기타 솔로파트에 있어 팁튼에 비해 다소 밀리는 인상이었던)의 피킹 하모닉스와 3연음 기반의 해머링을 결합한 솔로와 헬포드의 종반부 사우팅이 청각을 도발하는 'Jawbreaker', 메탈 마니아에게 하나의 찬가로 자리 잡은 공격력 넘치는 'The sentinel' 이 헤비메탈 사운드의 정점을 제공한다. 'Rock hard ride free', 'Some heads are gonna roll', 'Night comes down' 에서의 처절한 기운은 어느 앨범보다도 진지한 무게감을 전달하며, 전작의 'You've got another thing commin'에 이어 다소 대중적인 노선을 지향한 곡들인 'Love bites', 'Eat me alive' 조차 프로듀서 톰 알롬(Tom Allom)이 멤버들과 조율한 철갑옷처럼 두터운 음향과 함께 용솟음친다.
불뿜는 사운드에 비해 이 앨범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단순하고 과격한 가사(때때로 헤비메탈이 평가 절하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일 것이다. 특히 'Eat me alive'는 지나치게 솔직한(?) 성행위 묘사로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고, 'Jawbreaker' 역시 매우 지독한 성적 은어를 담았다. 'Love bites'는 중간에 백워드매스킹(단어나 구절을 거꾸로 녹음해서 삽입하는 것)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유다(예수를 배반했기에 기독교에서 좋지 못한 이미지를 가진)의 사제'라는 그룹명 때문에 항상 비평에 시달렸던 차에 사타니즘 논란이 있는 이 기법을 사용하면서 이들은 한층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가사를 쓴 롭 헬포드는 “나는 곡을 쓸 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운드를 찾는다. 다른 의도는 없다”고 응수했다. 앨범에 내포된 과격한 가사는 미국에서 조차 문제가 되었던 만큼 이들의 음악에 대해 비교적 관대(아이언 메이든이 한동안 거의 모든 음반이 금지되었던 것에 비해서는 자주 소개됐던)했던 한국에서 1990년대까지 발매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미세한 문제점은 음악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용서될 수 있었다. 오히려 여과되지 않은 직절적인 면은 젊은 층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기에 앨범은 붐을 일으킨 'You've got another thing commin'같은 특별한 싱글 히트곡 없이도 미국내에서 플래티넘 레코드(100만장 이상 판매)를 따내며 전작 < Screaming For Vengeance >에 이어 랑데부 홈런을 날렸다. 그러나 가사 면에서 여러 공격을 당해 지친데다, 히트 싱글에 대한 아쉬움 탓인지 다음 앨범 < Turbo >에서 훨씬 타협적인 노선을 추구하게 되었고, 사운드 역시 신서사이저를 대폭 도입해서 상당히 팝 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중립지점(Ram It Down)을 찾거나 더 과격해 지거나(Painkiller) 트랜드를 담아 변화를 주기도(Jugulator) 하며 다채롭게 변형하며 활동해왔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변신은 했을지언정 헤비메탈의 수호자라는 신념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 Defenders Of The Faith >는 이런 주다스 프리스트의 긴 메탈 여정 중 최절정의 사운드를 담고 있다. 사실상 이 앨범에 대해서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언급할 내용이 별로 없다. 첫 곡부터 마지막 여운까지 이들의 경력이 그대로 농축된 메탈 전성기의 아우라가 그대로 담겨있다는 사실 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1990년 대 이후 급격히 추락을 맞이해 언젠가는 '헤비메탈'이 사(死) 장르화 될지라도, 브리티시 메탈의 핵심을 담은 < Defenders Of The Faith >는 후대에게 '가죽 재킷과 금속 사운드'로 상징되는 강성 음악이 어떤 미학을 추구했는지 입증하는 수호자로 자리할 것이다.
윤석진(fand@paran.com)
-수록곡-
1. Freewheel burning
2. Jawbreaker
3. Rock hard ride free
4. The sentinel
5. Love bites
6. Eat me alive
7. Some heads are gonna roll
8. Night comes down
9. Heavy duty / Defenders of the faith
produced by Tom All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