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 남우주연 맷 데이먼(Matt Damon) 그리고 작곡가 존 파웰(John Powell)이 다시금 연합전선을 펼친 <그린 존>(Green Zone)은 조작된 기밀(機密)로 자기세력을 방어하려는 이들의 실체를 고발하고 이라크 침공의 진위(眞僞)를 알리려는 또 하나의 영화적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감독의 화제작 <화씨 911>(Fahrenheit 911)을 위시한 일련의 유사 작품들에서 익히 봐왔듯이 말이다. 정도나 시각에 따라서는 “믿거나 말거나 ”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보도성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또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허구라고 치부하기엔 사실감이 뛰어나다. 그 표현방식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있음직하다는 것이고 그 가상의 시나리오의 중심에 한명의 믿음직한 액션배우가 자리하고 있다. <그린 존>은 물론 지속적인 긴장과 전율을 주는 전쟁액션영화다. 정치적 스릴러이지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인해 신보수주의자들의 악행이 한 꺼풀 더 벗겨졌음에는 확실해 보인다. 이 영화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바로 이 영화가 굉장한 스릴러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진실 혹은 거짓의 판단을 떠나 <그린 존>의 명징한 핵심이다.
<그린 존>은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적인 방식에서 빗겨난 시각에서 미국인의 전쟁을 진단한다. 이 영화에서 활약하는 미군들은 전쟁영웅이 아니고 사기꾼들에 의해 조종되는 장난감병정과도 같다. 이라크의 전설적인 “대량살상무기”(Weapon of Mass Destruction)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전파하려한다. 미행정부 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사실을 날조했고 그 기만행위를 가리기위해 어떠한 살상도 대가로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다는 것이다.
그릇된 전제 하에 전쟁으로 가는 이야기묘사의 자각을 통해 우리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한 <그린 존>은 스릴러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입각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과 정황들은 묘하게도 현실과 매우 필적한다. <본>시리즈의 2, 3편을 만들어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감독은 제이슨 본으로 유명해진 맷 데이먼, 제지불가의 액션영웅을 주연으로 바그다드에 진입한다.
영화는 그러나 한낱 스릴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논쟁과 실증 사이를 오가는 영화는 처음부터 비난받을 작전미스의 단초들을 제시함으로써 속전속결의 의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라크 전을 책임진 전 미국대통령 부시(Bush)의 “임무완료” 자료화면을 실제 삽입해 이 전쟁을 역사적 오판으로 인식케 한다. 영화는 관객을 목격자로서 미국의 치명적 오류를 논증한다. 대량살상무기보유를 혐의로 이라크 군인들을 무차별 사살함과 동시에 그들을 방기했다는 사실.
사담 후세인에 대한 충정이 그렇게 크지 않은 이라크의 군은 무장병력을 안정시키는 데 기꺼이 협조했을 터인데 미국은 그 대신에 이라크 인들의 기본생존권을 박탈하고 소외감을 조장해 이간질 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내부의 문제를 외압으로 규합하고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해 승리를 정당화시키려는 시나리오는 명백히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선임준위 로이 밀러(Roy Miller) 역을 맡은 데이먼은 이야기의 발단에서 대량살상무기(WMD)의 저장소로 의심되는 창고 부지를 습격하는 임무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급습 장소엔 아무것도 없다. 또 다른 기습, 화학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이어지는 수색은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기를 저하시킨다. 매번 사상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그는 첩보의 근원지는 어딘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추적한다. 밀러는 국방부소속 요원 클락 파운드스톤(그렉 키니어 분)과 대면하고 CIA소속 요원 마틴 브라운(브랜단 글리슨 분)과 상호 공조관계를 형성하면서 진상규명에 단독으로 나선다.
<그린 존>은 CIA가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부족했다는 걸 보여준다. 파운드스톤은 신보수주의자들의 허구를 대변하는 설계자일 뿐 아니라 그들의 집행자이다. 그의 뒤에는 항시 즉각 출동할 특별부대까지 대기 중이다.
밀러는 왜곡된 현실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뉴욕 여성기자 로리 데인(에이미 라이언 분)을 만난다. 여성기자는 대량살상무기주장에 신빙성을 주는, 이라크의 비밀정보원에 대한 보도기사를 쓴 바 있다. 그녀에게서 그는 이라크군 장성 알 라위(이갈 나오어 분)가 파운드스톤과 요르단에서 접선한 사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한편, 파운드스톤의 말과 달리 사담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군사정보는 신보수주의자들이 바랐던 전쟁시나리오를 옹호하기 위한 위장술이었음이 드러난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의문에 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린그래스는 이를 상당히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시나리오작가 브라이언 헬게랜드(Brian Helgeland)와 공동 작업했다.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제한하고 고정배역을 맡기는 것을 사용해 그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속임수의 망을 만들었다. 또한 통역관 명목으로 밀러에게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큰 도움을 주는 현지인 프레디(카리드 압달라 분)를 설정해 영화의 가상현실적 전개에 중요한 열쇠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린 존>에서 액션은 <본>시리즈를 통해 익숙한 그린그래스의 촬영방식, 불안과 초조를 조장하고 때론 메스껍기도 한 스타일에 따라 마음을 산란케 만든다. 집중이 어려울정도의 다면체적 화면구성이 시각을 압도한다. 들고 찍기(Hand-held)에 의해 잡아낸 숏들 사이에서 다수의 빠른 컷들이 연속해서 펼쳐진다. 하지만 그 시각적 혼란은 이야기의 속도감 있는 전개와 밀착해 사실적 현장감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심히 정신 사납긴 하지만 신경과다로 괴롭거나 어지러울 정도까진 아니다. <본>시리즈와 같이 현란하고 복잡한 액션장면들이 현저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증으로 <본>시리즈에서 자동차추격 장면이 시각효과의 압권으로 든다면 여기선 영화의 종반 지상과 공중 양면에서 박진감을 주는 추격신일 것이다.
음악도 감독의 영화전개, 속도감 있는 액션과 시종 긴장의 끈을 못 놓게 하는 스릴에 부합하는 대기의 사운드를 투입한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를 지원한 작곡가 존 파웰(John Powell)은 이전 감독과 작곡가 팀플레이를 멋지게 보여준 <본>(Bourne)시리즈의 2편 <본 슈프리머시>(Bourn Supremacy)와 <본 얼티메이텀>(Bourne Ultimatum), 그리고 <유나이티드 93>(United 93)에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주류 액션영화, 간첩영화의 구성, 그리고 현대전쟁의 비극 사이에서 선회하는 영화가 주목할 만한 시선의 제작 그 자체와 오락영화로서 모두, 비평과 일반관객의 요건을 충족시킬 만한 것과 같이, 이 특별한 사실적 영상에 소리의 파장을 독려한 파웰은 가장 최근작인 <본>시리즈 스코어를 환기시키며 생생한 음속의 융단폭격을 가한다. 퍼커션을 이용한 긴박한 질주감이 그 특징적 요소. 과하지 않게 영화에 필요한 만큼 적절히 투영된 음악은 장르나 스타일,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속도에 부합하는 대기와 속도감을 제공한다.
<그린 존>을 위한 파웰의 동질감은 퍼커션을 주요악기로 스코어의 사운드질감을 확정한다. 여기서 퍼커션은 소란스럽고도 또렷하다. 이의 사용은 잔혹할 정도로 지독하게 스코어를 관통하며 귀청을 강타한다. 실로 대단한 추진력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몰고 가는데 정확한 감각적 분위기를 발한다.
<본>시리즈의 사운드트랙과 같이, 이 스코어는 대개 쾌속의 고주파 전자음악과 관현악편성이 결합하고 혼융된 악곡들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여러 다른 제목의 트랙들로 분류된 악곡들은 영화의 전개를 돕거나 배경이나 분위기를 인상지우는 역할로 사용되었다. 신서사이저와 교향악이 조화된 스코어에서 쾌감을 얻는 영화 또는 음악팬이라면 영화의 장면과 함께 사실감 있는 이야기 전개의 묘미를 공히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Traffic jam'(교통 체증)과 같은 트랙들은 대기를 부유하거나 감도는 음향적 사운드서부터 지속적인 긴장감을 부여하는 오케스트라까지의 사이에서 변동하고 등락을 거듭한다. 이라크가 주 무대인 터라 다소의 중동 풍 현악을 결합 가미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라크 통역관 프레디의 캐릭터를 감정적으로 연주하는 현악위주의 곡 'WTF' 외에는 거의 모든 악곡들이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액션 큐로서 작용한다. 'Meeting Raid'(기습부대를 만남)와 같은 큐에서는 인도의 타악기 타블라(Tabla)를 유효 적절히 활용했다. 'Miller Googles'(밀러 구글로 검색하다)와 같은 곡들은 관객의 뇌리에 영화를 굉장히 직접적으로 투영한다. <그린 존>의 진수를 기막히게 포착했다.
이 스코어에 대해서 하나의 흥미로운 인식은 영화의 주 무대인 중동의 아라비아 풍 사운드의 영향은 미미하고 서구의 관점에서 그리고 <그린 존> 자체의 열렬한 핵심으로부터 전면적인 사운드가 비롯된다는 것이다. 민속적인 감화력이 큰 드라마적 스코어라기보다 전례적인 액션 스코어에 가깝다. 판에 박힌 액션스코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혹하리라만치 강력한 사건들과 빠른 보조의 액션의 상을 그리게 하는 음악이다. 그가 음악을 맡은 <페이첵>(Paycheck)과는 달리 스토리에 확고히 밀착되어 있다.
이 스코어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일관성이다. 퍼커션이 중심이 된 맹렬함, 배경악기로서 악기편성을 특징적으로 다루는 솜씨는 가히 일품이라 할만하다. 단 간결하고 명징한 메인테마를 착상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확실히 기억에 남을 강조점을 찍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영화가 액션스릴러 그 자체로 대단하듯이 사운드스코어가 주는 공간감과 맹습도 실로 강렬하다.
-수록곡-
1. Opening Book (2:32)
2. 1st WMD Raid (2:39)
3. Traffic Jam (2:59)
4. Meeting Raid (4:31)
5. Helicopter/Freddy Runs (2:43)
6. Questions (3:26)
7. Miller Googles (1:53)
8. Truth/Magellan/Attack (3:50)
9. Mobilize/Find Al Rabi (5:15)
10. Evac Preps Part 1 (8:34)
11. Evac Preps Part 2 (3:22)
12. Attack and Chase (5:25)
13. WTF (1:15)
14. Chaos/Email (4:17)
▶ 배역&출연
로이 밀러(Roy Miller): 맷 데이먼(Matt Damon)
클라크 파운드스톤(Clark Poundstone): 그렉 키니어(Greg Kinnear)
마틴 브라운(Martin Brown): 브렌단 글리슨(Brendan Gleeson)
로리 데인(Lawrie Dayne): 에이미 라이언(Amy Ryan)
프레디(Freddy): 카리드 압달라(Khalid Abdalla)
브릭스(Briggs): 제이슨 아이작스(Jason Isaacs)
알 라위 장군(Gen. Al Rawi): 아이갈 나오어(Igal Naor)
제공 유니버설 픽처스(Universal Pictures)
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
각본 브라이언 헬게랜드(Brian Helgeland), 라지브 챈드라세카란(Rajiv Chandrasekaran)의 책 < Imperial Life in the Emerald City: Inside Iraq's Green Zone >(에메랄드 도시에서의 제국의 삶: 이라크의 그린 존 내부로)에서 영감 받음.
상영시간 114분
관람등급 R등급(전쟁 폭력과 언어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