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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 93 (UnIted 93)
존 파월(John Powell)
2006

by 김진성

2010.02.01

2001년 9월11일, 미국을 강타한 대참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한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 소속의 폭력혁명주의자들이 비행기를 공중 납치, 미국국방부와 뉴욕의 쌍둥이 빌딩으로 유명한 세계무역센터로 몰고 가 자폭해버린 대사건은 지구방위군을 자처하는 미국 본토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공포와 경악에 빠뜨렸고 그 후유증은 실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충격은 전 세대를 아울러 “진주만”침공이나 JFK저격당시와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것일지도 모를 그런 것이었기에 현재는 물론 이후세대들에게도 21세기를 규정하는 인문상의 시금석 중 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몇몇 다큐멘터리물이 이미 이 주제를 다룬 것은 물론 9/11테러에 관한 영화들이 속속들이 만들어지고 개봉되었다. 사실 충격이 가시기엔 너무 이른 시간인 감이 있지만 영화사에서 이토록 좋은 소재를 간과할 리 만무한 법. 5년 밖에 안 됐는데 아직 이르다는 말이 있었으나 결국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어졌다.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의 영국출신 감독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의 연출 하에 제작된 영화 <유나이티드 93>(United 93)은 그날 뉴욕시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의 이야기를 알리지는 않는다. 그 과업은 <플래툰>(Platoon)의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에게 남겨졌다.

대신에 이 영화는 사건 당일 네 번째 비행기에 렌즈의 초점을 맞춰 현장을 충실히 재현한다. 비행기는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하고 펜실베이니아 섕크빌 근교 벌판에 추락했다. 비행기는 아마도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 또는 다른 요충지에 충돌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토드 비머(Todd Beamer), 마크 빙햄(Mark Bingham) 그리고 제레미 글릭(Jeremy Glick)과 같은 승객들의 영웅적 합세로 인하여 공중납치범들의 임무는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된 것이다.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44명의 승객들의 목숨은 안타깝게도 희생됐지만 덕분에 더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의 일부를 사실적으로 재조명한 다큐적 영화.

작곡가 존 파웰(John Powell)이 <유나이티드 93>을 위한 음악을 쓰면서 직면해야했던 잠재적 문제 중 하나는 필름 안에 자신의 스코어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 였을 것이다. 극적 분위기를 적당히 부여하고 사실적 영상에 조응하면서 할리우드적인 상투성을 배제한 음악을 만들어 넣기 위해 그는 작곡가 벨톤 레이 번치(Velton Ray Bunch)가 이미 몇 달 일찍 동일한 사건에 대한 TV영화를 위해 만든 밀도 낮고 전자음악적인 스코어를 참조했다.

감독 그린그래스가 데이브다 앨런 바쉬(David Alan Basche), 피터 허먼(Peter Hermann), 샤이엔 잭슨(Cheyenne Jackson)과 같은 무명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현실감을 강화함에 따라 파웰도 대부분에서 희박하고 망설이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스트링 위주의 오케스트라, 신서사이저, 독창들을 활용해 위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간 파웰은 제작자들의 바람에 따라 음악이나 소리 자체로 관심을 끌지 않는 순수한 배경사운드를 구현했다. 더 엄밀히 공기 중을 떠도는 공감각적 소리의 풍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스코어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대기를 감도는 분위기적 사운드'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단조롭게 윙윙거리는 전자음과 끝없는 스트링 음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이동하는 바이올린과 첼로 화음, 울리는 벨소리, 미묘한 신서사이저 비트 그리고 공허한 중동 퍼커션이 덧씌워져 결합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후반부 사운드의 요소들은 아마도 비행기납치범들 자신의 사고와 액션을 위한 음악적 차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앨범의 첫 20분은 거의 전체적으로 이와 같은 음악으로 구성되었다. 매우 드문 간결한 간주를 제외하곤 시종 공포감을 주는 사운드 텍스처나 오케스트라에 의한 불길하고 음울한 음조를 띈다.

브라스가 터지는 '2nd Plane Crash', 샘플링 베이스 목관악기사운드가 가미된 'Making the Bomb', 또는 윙윙거리는 일렉트릭 바이올린 사운드를 수반하는 'The Pilots'이 그와 같은 예이다. 몇몇 큐들, 현저히 'Prayers', '2nd Plane Crash', 그리고 10분여의 'Phone Calls'와 같은 곡들은 어린이 성가대원의 쓸쓸한 보컬사운드를 특징삼아 전개된다. 존의 아들 올리버 파웰(Oliver Powell)의 영창 조의 보이스는 스트링 위로 침울하게 깔리며 절망적인 순간을 강화한다. 이 순간들에서 영화는 약간 새로운 차원을 취한다. 순수함의 상실, 스크린에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의해 영원히 부서지 버린 것에 대한 순수한 심정을 공유한다. 어린 파웰의 목소리는 훈련되지 않은 날것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주는 공명감은 확실히 빛난다. 이 짧은 순간들은 스코어 최고의 부분이라 할 것이다.

단지 'The End'가 흐르는 마지막 순간동안 파웰의 작곡은 생명이나 힘을 갖고 작동한다. 그는 불운한 승객들을 밀고 나가는 최후의 드라마적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스트링 라인, 격앙된 퍼커션 리듬, 그리고 급박한 일렉트로닉 맥동을 이용해 액션에 드라이브를 가하고 어둡게 이동하는 점강음을 통해 비극적 결말에 감동의 구두점을 찍었다. 'Dedication'은 맹렬하게 감정을 몰아가지 않고 할리우드적 영광을 발하지도 않으며 위조된 감정을 생기게 만들지 않는다. 단지 조용하고 간결한 현악 애가, 아이의 애정 어린 속삭임을 특징으로 인간미를 준다.
김진성(saintopia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