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하바나 (Havana)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
1990

by 임진모

2001.05.01

데이브 그루신과 시드니 폴락 감독은 판박이 마냥 여러모로 빼 닮았다.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감촉을 공유해 러브스토리에 제격일뿐더러 둘다 세련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가 도시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하바나>로 1991년 아카데미 음악 상 후보에 올랐을 때, 시드니 폴락 감독은 데이브 그루신을 가리켜 "낭만적이고 공포감이 넘치면서도 한편 엄숙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율, 그렇게 풍성한 음악을 제공해주는 뮤지션"이라고 평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75년 영화 <야쿠자>에서부터 시작되고, 같은 해 발표한 영화 <콘돌>로 엄청난 사운드트랙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당연히 퓨전 재즈를 담은 그 앨범은 영화음악에 새 전기(轉機)가 됐다. 데이브 그루신이 영화음악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시드니 폴락 감독의 든든한 후원과 아낌없는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

둘은 <야쿠자> <콘돌>에 이어 <Bobby deerfield> <the electric horseman>, <Absence of Malice>, <투씨>, <하바나>, <야망의 함정>에 이르기까지 무려 8작품에서 콤비 플레이를 펼쳤다. 시드니 폴락 감독으로서도 데이브 그루신과 함께 했던 시절이 그의 최고 절정기였음은 물론이다.

<하바나>는 시드니 폴락 감독과 그의 ''왼팔'' 데이브 그루신, 그리고 그의 오른팔 레드포드가 빚어내는 영롱한 트라이앵글 울림이다.

그루신의 음악은 사랑의 대 서사시에는 일가견이 있는 시드니 폴락 감독의 의중을 훤히 꿰뚫는 듯이 감정곡선을 타고 움직인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열기를 내뿜는 그 하바나의 풍경과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러브스토리를 떠도는 그의 스코어는 정곡을 찌르는 신묘함이 있다.

그루신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두 번째 연출작인 <반항의 계절>로 1988년 아카데미 음악상과 그래미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미셀 파이퍼 주연의 로맨틱한 재즈 영화 <사랑의 행로>로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는 컨템포러리 재즈 레이블인 GRP의 창립하기도 했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재즈에 심취해 그의 음악행로를 일찌감치 고정시키게 된다. 그에게 앙드레 프레빈과의 음악적 만남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당시 MGM 전속 작곡가인 앙드레 프레빈의 음악세계에 빠져들면서 막스 스타이너, 알프레드 뉴만과 같은 초창기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탐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악 스타일과 강약에 귀기울이며 영화음악 작곡가로 일보 전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앤디 윌리암스 쇼''의 음악감독으로 명성을 쌓게 되면서 마침내 할리우드로부터 손짓을 받았다.

1967년 버드 요킨 감독의 <Divorce American style>을 시작으로 <졸업>,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챔프>, <황금 연못>, <사랑의 행로> 물론 <셀레나>에 이르도록 지금까지 영화와 TV물까지 합쳐 70여 편이 넘는 작품에 선율을 입혔다.

이 영화 <하바나> 에서는 GRP소속 재즈 뮤지션일 리 라잇너(Lee Ritenour)의 기타 연주와 아르투로 산도발의 트럼펫 연주까지 첨가된 매혹적인 재즈 선율로 우리를 유혹한다. 영화의 시작을 이국적으로 부추기며 첫 장면을 황홀하게 감싸는 영화의 메인 타이틀은 아르트로 산도발의 트럼펫과 데이브 발렌틴의 플롯 선율이 귓불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살 마르께즈의 트럼펫이 고즈넉한 밤 풍경을 연상시키는 발라드 ''Night-work'', 그리고 데이브 그루신의 피아노 연주가 영롱하게 물결치는 영화의 러브 테마도 아름답지만, 도리 케이미의 감미로운 스캣이 애틋함을 던지는 ''Hurricane country''야말로 이국적인 도시에서 움튼 애절한 러브스토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영화음악에 세련된 재즈 감성을 불어넣은 데이브 그루신의 음악세계가 여기 있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