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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류이치 사카모토(龍一坂本)(Ryuichi Sakamoto)
1983

by 임진모

2001.05.01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첫 번째로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그는 영화의 연기자로 분하기도 했다. 또한 전투적이었고 정치적이었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첫 번째 영어 영화다.

나기사 감독은 2차 세계 대전 중 동남아 자바섬에 있는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서로에게 매혹되는 두 남자의 미묘한 감정을 영화로 표현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영국 군 장교와 포로 수용소 지휘관인데, 그 장교 잭 역에 데이비드 보위가, 그리고 포로수용소 지휘관인 요니 중위 역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출연했던 것이다.

동서양의 걸출한 뮤지션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그 두 사람에게서 미묘한 동성애 적인 뉘앙스를 끌어낸다는 점은 화제 거리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영화음악이 내정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감각의 제국>으로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열정의 제국>으로 칸 영화제 감독 상을 수상한 직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대본을 들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사무실로 와서는 이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좋다고 하면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영화의 음악까지 맡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 ''거래''에 의해서 그가 영화음악 작곡가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의 음악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실험적인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특히 강렬한 파워를 지닌 짧은 음률들과 그 매혹적인 변주는, 이 사운드트랙을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특히 사운드트랙의 맨 마지막 트랙에 삽입된 ''Forbidden Colour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만든 테마 선율에 그룹 저팬(Japan)의 멤버이기도 했던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실비안이 노랫말을 붙이고 직접 노래도 불러준 곡이다. 사운드트랙의 맥락을 벗어나도 충분히 유혹적이고 강렬한 울림으로 우리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 자신을 ''일종의 해설자''라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영화음악 작업은 생소한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통로"라고 덧붙인다. 때문에 그는 늘 연구 탐구하는 자세로 영화라는 드넓은 바다로 뛰어든다. 그것이 일본을 비롯해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과 작업하면서도 늘 기대이상의 성과물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그는 시대와 국경, 그리고 음악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늘 열정적인 호흡으로 강렬한 이미지의 파장을 선사한다. 그의 첫 번째이자 최고의 영화 음악으로 칭송되는 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사운드트랙으로 그의 스코어 세계와 만난다. 17년이란 세월의 공백은 이 거장의 체취에 비하면 하잘 것 없어 보인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