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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반젤리스(Vangelis)
1982

by 김진성

2001.06.01

필립 K.딕의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보았는가?>(Do Androlds Dream of electric sheep?, 1968)에 바탕을 두고 제작돼 1982년 극장에 걸린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사이버펑크적 감수성이 짙게 배어있는 컬트영화로 높이 평가받는다. 후대로 갈수록 더욱 고평가받은 명화는 첨단과학과 고도의 기술적 발전으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할 정도의 미래가 도래하지만 반대급부로 인간성 자체를 재고해보는 성찰적이고 진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뭉근한 감동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전개는 암울한 묵시적 분위기로 일관한다. 네온사인과 화려한 광채의 광고판 그리고 우뚝 솟은 수 많은 굴뚝 위로 품어져 나오는 폭발적 화력과 시종 흐리고 비가 내려 음습한 배경무대. 그 안에서 "과연 자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짐짓 무거운 주제의식을 자문하는 영화는 주제도 주제지만, 전작 <에일리언>(Aliens, 1979)에서 선보인 바 있는 침울한 무드 또는 대기와 미래 지구의 어두운 이면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스콧 감독만의 독특한 영화적 시각을 관객에게 이식시킨다.

그러한 외경의 탄생은 이후 영화에 상징적인 아이콘처럼 적용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또한 영상에 배치된 갖가지 장치들이 던지는 수많은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분분한 해석들로 골수 팬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오죽하면 거의 10년이 지난 후 감독편집판이 새로 나왔겠는가. 디지털영상으로 복각해 시각적으로나 음향 또는 음악적으로 경이로움을 다시금 안겨준 복원판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Blade Runner The Final Cut)은 또 어떻고. <블레이드 러너>에 내재된 수많은 난제들은 여전히 완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러나 스콧 감독이 가장 진부한 듯 하면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사랑"(Love)이라는 주제를 던져놓음으로써 한편으론 그 실마리를 풀어나가게 했다는 사실이다. 청회색 톤의 미래 지구가 그려낸 쓸쓸하도록 냉랭한 풍광과 대비된 복제인간의 사랑은 <블레이드 러너>에 담긴 또 하나의 핵심이다. 영화 전체를 이 두 가지가 이끌어 간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영화의 핵심주제어와 더불은 사운드 효과도 시각과 스토리를 잇는 가교역할로서 경이로움을 연장한다. 그 주역은 다름 아닌 반젤리스(Vangelis) 또는 방겔리스다.

화면의 톤과 적절히 어울리는 그의 전자사운드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차갑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영상과 사운드의 궁합이 절묘한 탓에 사운드트랙 역시 영화와 함께 컬트가 된 건 주지의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만든 음악을 들은 스콧 감독은 암울한 영화자체의 분위기와 안 맞는다며 성화였다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오프닝 장면과 함께 '메인 타이틀'(Main titles)이 흐른다. 영상을 부유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음악은 미래사회를 예견하듯 신서사이저의 전자음향이 공간을 배회한다. 영상 전반을 관통하는 반젤리스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의 전형을 따른 것이다. 웅장한 클래식음악편성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다양한 효과음들과 융합, 혼재하는 그의 일렉트로닉 배음은 단적으로 냉담하기 그지 없다. 싸늘하게 가슴을 후비는 소리의 풍경이라고 할까.

사실 이러한 음악은 미래 도시의 음울한 전경에 도취된 관객들에게 그다지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단지 화면이나 이야기 전개에 평행한 음조로 영상에 존재하면서 관객들의 편안한 감상을 도울 뿐이다. 매우 감정적인 포인트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사운드트랙의 스코어에 삽입된 극장 인물들의 대화는 그다지 영상을 떠올리는데 커다란 작용을 하지 못한다. 내러티브의 삽입으로 재생효과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음악 그 자체로 감상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되레 앰비언트나 에스닉(Ethnic) 또는 뉴 에이지적 관점에서 영화 외적으로 상당히 괜찮다.

'러브'에 매료된 관객이라면 주인공 데커(해리슨 포드 분)와 복제인간 래이첼(숀 영 분), 두 인간 대 레플리컨트 혹은 복제인간 대 복제인간 사이에 싹트는 애정을 표현하는 음악의 포근한 감상성에 중력을 둘 것이다. 둘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단선적인 피아노 음, 달콤한 재즈적 색소폰 사운드, 여성의 허밍 보컬이 전자음과 혼합되어 명상음악과 같은 고요의 세계로 관찰자를 이끈다 .

사운드트랙에서는 3, 4, 5, 8번 트랙에서 그 따뜻한 온기의 선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9번째 트랙인 'Tales of the future'(미래의 이야기)는 예전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의 동료였던 데미스 루소스(이집트 출신)의 솜씨가 가미된 곡. 10번째 트랙과 함께 데커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저잣거리에서 복제인간을 추적하는 과정에 사용되었다. 중동 풍의 타악기과 현악기, 그리고 남성보컬과 전자음향의 혼합이 혼란스러움과 함께 신비로운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장면에 투영했다.

노점에서 데커가 맥주를 마실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뮤트 트럼펫과 감미로운 보컬과 피아노가 앙상블을 이룬 'One more kiss, dear'(한 번 더 입맞춤, 당신)는 영상과 사운드트랙 전반적 분위기에 완전히 역행하는 독특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실로 절묘한 선택. 이 곡은 국내 모회사의 제과 광고음악으로 쓰여 인기를 얻기도 했다.

'메인 타이틀'과 함께 전체적인 사운드트랙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엔드 타이틀'은 현대 클래식과 전자음을 절묘하게 퓨전한 반젤리스의 재능을 보여주는 명증일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의 음악으로 가장 많이 기억되었을 이 곡과 더불어 <블레이드 러너>의 사운드트랙은 컬트로 남을 만큼 영화와 생을 같이 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1994년이 되어서야 반젤리스의 제작앨범으로 완성되었다.

-수록곡-
1. Main Titles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Blade Runner"
2. Blush Response
3. Wait for Me
4. Rachel's Song - Mary Hopkin, Vangelis
5. Love Theme from Blade Runner [Music from Blade Runner] - Dick Morrisey, Vangelis
6. One More Kiss, Dear [Music from Blade Runner]
7. Blade Runner Blues [From the Motion Picture blade Runner]
8. Memories of Green [Music from Blade Runner]
9. Tales of the Future
10. Damask Rose
11. Blade Runner (End Title) [From the Motion Picture blade Runner]
12. Tears in Rain [Music from Blade Runner]
김진성(saintopia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