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1942 콜럼버스
반젤리스(Vangelis)
1992

by 김진성

2001.05.01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지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1992년 개봉된 <1492:콜럼버스>(1492: Conquest of Paradise)는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드 드 빠르디유의 출연과 리들리 스콧의 화려한 영상미로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었지만, 예상보다는 저조한 평작 정도로 평가받았다.

오히려 <블레이드 러너>(1982) <위험한 여인>(1987) 이후 3번째로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과 손을 맞잡은 작곡가 반젤리스(Vangelis)의 영화음악이 더욱 인상적이었다(영화에 대한 음악의 승리!). <1492: 콜럼버스>의 사운드트랙은 엄밀히 말하면 영상과 어울린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로 더욱 빛나는 독립성을 갖는다.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반젤리스의 전자음향에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한 ''교회음악''의 요소가 그 중량을 부각시키고 있어 더 그렇다.

사실 모든 영화에 삽입되는 스코어는 각각의 영상을 뒤에서 보충하고 또 각인하는 게 주목적이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반젤리스의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정반대다. 때로 영상과 부적절한 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음악은 이전의 전자음향에다 민속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광활한 영상의 배경벽지를 감싸안았다. 역설적이게도 사운드트랙은 엄청난 양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영화가 발표된 1992년 이후 영화는 서서히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지만 반젤리스의 음악만은 오랫동안 기억 속의 빈터에 자리잡았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변화는 컬트영화의 스코어로 묶여버린 <블레이드 러너>에서부터 꾸준히 변천된 과정의 일부로서 ''15세기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블레이드 러너풍의 사운드''라고 할만한 것이다. 반젤리스의 전자악기를 다루는 뛰어난 통찰력이 <1492: 콜럼버스>에 와서 더욱 복합적이고 완벽한 사운드를 뽑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콜럼버스의 국적인 스페인의 이국적 풍광을 강조하기 위해 간간이 만돌린과 기타를 혼용함으로써 음향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 반젤리스 예의 일렉트로닉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이따금 색다른 음감을 첨가했다. 특히 풍부한 성인 합창의 가세는 스코어에 가장 효과적인 요소로 작용하고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칠 뿐 반젤리스의 음악은 어떤 장면의 변화나 리듬에 개의치 않는다. 단지 망망대해와 광활한 초원 그리고 신대륙의 환경적인 분위기와 친화할 뿐이다. 요컨대 장엄한 스코어가 많은 장면들을 끼고 돌지만 영상을 떠오르게 하는 절묘함은 떨어진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는 뉴 에이지 앨범에 가깝다. 크게 나누면 분위기 음악이라 할 무작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굳이 세분하자면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음악을 담당했던 기타로와 궤를 같이하는 뉴 에이지 음악이며 전자음향에 기반을 둔 프로그레시브와 앰비언트적 관점에서는 브라이언 이노, 핑크 플로이드, 탠저린 드림과 동반관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테크노 계열까지 확장해본다면 오브, KLF, 에이펙스 트윈, 오비틀까지도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다.

사운드트랙에서는 앤드 크레딧과 함께 다가오는 타이틀 트랙인 두 번째 곡에서 가장 만족스럽고 우아한 합창 테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자유롭게 대기를 유영하는 듯한 <1492: 콜럼버스> 사운드트랙은 여타 장르의 스코어와는 사뭇 다른 특징인 뉴에이지와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일렉트로닉과 앰비언트의 특징을 고루 겸비한 반젤리스의 ''퓨전 완성형'' 작품이자 그의 독집이라고 할 앨범이다.
김진성(saintopia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