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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비비 킹(B.B. King)
2008

by 임진모

2008.02.01

무수한 기타영웅들이 있지만 비비 킹의 이력과 음악세계는 각별하다. 우선 지명도를 비교해야 하는데, 블루스 연주에 관한 한 그의 약칭 비비(B. B.)가 '블루스 보이(Blues Boy)'에서 딴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대표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치는 기타의 이름인 루실(Lucille) 또한 유명하다. 이번 < Live > 앨범의 마지막 인사 때도 비비킹은 “제 기타는 루실이고 제 이름은 비비 킹”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비 킹의 기타세계도 특별한 것들이 많다. 비비 킹은 어떤 전문지나 비평가 혹은 팬들이 일제히 꼽는 전설의 기타영웅이지만 놀랍게도 노래할 때는 기타 연주하는 것을 익히지 못했다. 이 얘기는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블루스 싱어임을 뜻하기도 하지만 기타만으로 볼 때 다양한 리듬 스타일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된다. 그는 결코 화려한 그리고 다채로운 리듬 주법의 소유자가 아니다. 대신 더러 그는 기타 한 소절 연주한 뒤 노래 한마디 하면서 노래와 연주간 상호작용 즉 콜 앤 리스펀스(Call and Response) 스타일을 구사한다.

비비 킹 기타를 정의할 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빠르고도 강력하며 극적인 비브라토(Vibrato) 테크닉이다. 본 앨범을 수놓는 결코 지울 수 없는 블루스 터치의 기타연주가 여기서 비롯된다. 실로 비비 킹의 연주자로서의 성공은 전적으로 여기서 나왔다고 과언이 아니다. 왜 비브라토 기법인가에 대해 비비 킹은 1991년 전문지 '기타 플레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이 멍청한 손(stupid fingers)이 전혀 슬라이드 기타를 연주하지 못해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비브라토 테크닉이 발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곡 'The thrill is gone'과 블루스 초기의 전설 빅 빌 브룬지(Big Bill Broonzy)의 것을 리메이크한 'Key to the highway' 그리고 본 앨범의 걸작 'All over again'으로 확인할 수 있듯 기타 현을 들어올리는 이른바 벤딩(bending) 테크닉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마치 말을 하는 듯하고 슬프게 우는 듯한 이 느낌은 비비 킹 기타가 블루스 가수의 노래나 한가지임을 명백히 증거한다. 이번 < Live > 앨범에서 다시금 절감하는 것은 그러나 기타연주자가 아니라 가수로서의 측면이다. 그의 노래는 'All over again'의 흐느끼는 절규와 포효가 말해주듯 선조인 노예 흑인의 낙인이 축적해온 고통, 분노 그리고 현실탈출과 해방 의지의 역사가 읽히지만, 그만큼 슬프고 한스럽지만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휴먼 터치를 전한다.

아마도 굵고도 여유 있는 목소리 톤이 그런 맛을 전해주는 것으로 보는데, 그가 백인 음악수요자들을 관통하고 공연 때 루이 암스트롱 식의 유쾌한 농담으로 재미를 더해주는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었던 원초적 이유는 그의 정감에 찬 보이스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점은 미국의 백인 기성세대들이 좋아하는 올드 스탠더드 'You are my sunshine'을 음반 최초로 실었다는 점으로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제 블루스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누구나 인정하는 아티스트이지만 동시에 공연장의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이런 절대 위상을 누리는 인물은 거의 없다. 창조적인 아티스트이면서 대중적인 연예인. < Live > 앨범의 아름다움은 실로 1925년에 태어나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한 80대의 노인이 선사하는 공평한 음악의 진지와 흥에 있다.

이번 앨범은 자신이 소유한 두 군데 내시빌과 멤피스 소재의 클럽에서 행한 공연을 간추린 것이다. 그게 2006년 10월이었으니 그때 이미 나이 여든 살이 넘었다. 그런데도 라이브 앨범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1965년의 < Live At The Regal >과는, 노장이 아니면 불가능한 또 다른 감흥을 제공한다. 아마 이 공연앨범은 동시에 출시되는 DVD와 함께 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레퍼토리도 'Bad case of love'처럼 빠른 것과 'I need you so'와 같이 느린 것을 안배하고 있으며 자신의 히트곡인 'Rock me baby'(1964년), 'Why I sing the blues'(1969년)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거나 최신곡인 'All over again'과 'Blues man'을 지혜롭게 고루 섞는 균형감을 발휘한다. 'You are my sunshine'은 그 극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유 영역인 블루스로부터는 한 발도 비켜나지 않는 뚝심은 여전하다. 이게 멋지다.

비비 킹은 연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한해에 수백차례의 무대에 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한다. 자신의 감정을 기타와 노래로 올곧이 전달하고 블루스의 구슬픔과 흥을 대중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그만의 신념은 마치 수천 년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보석처럼 천연히 빛을 발한다. 듣고 있지만 공연장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행복한 비비 킹의 음악세계가 여기 있다.

-수록곡-
1. Mr. King Comes on Stage
2. Why I Sing the Blues
3. I Need You So
4. Bad Case of Love
5. Blues Man
6. When Love Comes to Town
7. All Over Again
8. You Are My Sunshine
9. Rock Me Baby
10. Key to the Highway
11. The Thrill Is Gone
12.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