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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1962-1966
비틀스(The Beatles)
1973

by 임진모

2001.02.01

비틀스가 영국에서 '비틀마니아'를 야기하기 전 영국은 내각을 들쑤신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이라는 정계 추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명의 매춘부에 의해 근엄한 의회가 농락당한 이 사건으로 영국인들은 정치에 깊은 회의에 빠졌다. 누군가 이 분위기를 전환해야 했다.

미국도 곤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주화의 거대한 우산이 돼주었던 케네디 대통령이 63년 12월 괴한의 총격에 암살되었다. 공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힘을 모았던 대학생과 지성인 등 민주세력은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제 미국의 정치와 사회는 그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줄 수 없었다.

비틀스는 양국의 이런 슬럼프 시점에, 어떤 사람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얘기하지는 못하던 시점에 불쑥 등장했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이 네 마리 영국 리버풀 출신 딱정벌레는 사회적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즐거운 이야기들 그리고 신나는 음악을 뿌려댔다. 유쾌한 자들이라곤 그들 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곧 양국 전체가 이 '근사한 4인'(Fab Four)의 일거수 일투족을 쫒으면서 침묵에서 깨어나 흥분과 함성을 회복했다. 애초에는 10대 소녀들의 집단 히스테리로 시작됐으나 잠시 후엔 전 세대와 계층이 비틀마니아에 포위되었다. 영국은 63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개월 사이 하루 걸러 한번 정도로 그들의 기사가 전국의 일간지 1면을 장식했다. 64년 3월 미국에 가서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에 당도했을 때 비틀스는 존슨 대통령마저 압도했다. 당시의 빌보드지 보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이 곳을 방문했지만 그의 도착 기사는 비틀스 공습에 가리워지고 말았다. 아무도 대통령의 방문은 몰랐지만 영국의 비틀스가 뉴욕에 왔다는 사실을 놓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비틀스는 단순한 음악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런 측면에만 접근했으며 그들의 실력은 다소 과소평가한 점이 없지 않았다. '네 손을 잡고싶어'(I want to hold your hand)가 평지풍파의 회오리를 일으켰어도, 그들의 곡이 64년 4월 4일자 빌보드 차트의 1위부터 5위까지를 잠식했어도 제도권의 지배적 의견은 비틀마니아가 반짝으로 끝나리라는 것이었다(이 때 차트 순위는 1위 'Can't buy me love', 2위 'Twist and shout', 3위 'She loves you', 4위 'I want to hold your hand', 5위 'Please please me'였다).

초기의 단순한 로큰롤은 사회적 폭발에 눌린 탓에 큰 음악적 주목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이제까지 미국인들이 접해보지 않은 독특하고 개성적인 로큰롤이었다. 거기에는 영국 특유의 셔플 감각이 뒤섞여 있었으며 무엇보다 '젊은 피'로 가득했다. 그리고 아주 신선했다.

사실 음악 수요자들은 처음으로 '밴드'가 연주하는 로큰롤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이전의 로큰롤 스타들은 거의가 솔로 아티스트들이었다. 넷이서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을 울려대며 '헬프'(Help!)'고된 날의 밤'(A hard day's night)을 연주하는 것은 엄청난 중량과 파괴력을 발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는 “소녀들이 비틀스의 격렬한 몸짓과 포효에 묘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비틀스 팬들 중에는 의외로 나중의 예술성이 강한 작품보다는 초기의 순수한 로큰롤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바로 이 앨범이 그런 비틀스의 순수한 폭발력을 간직한 곡들의 집체다. 예상보다 뛰어난 연주 앙상블과 곡 감각(단순한 코드로 좋은 곡을 쓰기란 더 어렵다)을 들려주는 초기 작품들은 어떻게 그들이 '록 르네상스'를 주도한 그룹으로 평가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명반으로 선정하면서 “이즈음 비틀스가 만들어낸 노래들은 좋지 않은 것이 단 한 곡도 없다”고 했다.

비틀스의 경이로운 승전보는 그들 내부에서 모든 발표곡을 주조해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가치를 발한다. 그들이 리버풀의 캐번 클럽과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웅지(雄志)를 키우던 시절에는 남의 곡을 많이 연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모방의 틀에서 벗어나 창조의 세계로 들어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 컴비라고 일컬어지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그 창조의 주역이었다.

이 두 장 짜리 CD의 스물 여섯 곡 모조리 존과 폴이 공작(共作)해냈다. 의도적으로 남의 곡을 불러 히트시킨 곡 예를 들면 '트위스트 앤드 샤우트'나 '슬로 다운'(Slow down) 그리고 팀 동료 조지 해리슨의 노래로 차트 2위까지 오른 곡'비밀을 알고싶나요'(Do you want to know a secret)는 배제하고 존과 폴의 작품들로만 꾸민 것이다. 오로지 존과 폴의 초기 음악세계를 전달하자는 의도다.

두 사람은 설령 혼자 곡을 다 썼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레논 앤드 매카트니'의 작사.작곡으로 내거는 계약을 맺었다. 사실 CD2의 '갈 곳 없는 인간'(Nowhere man)은 존의 곡이고 '페이퍼백 라이터'(Paperback writer)는 전적으로 폴이 썼지만 발표는 둘의 공동 작품으로 했다. 그러나 '네 손을 잡고싶어'나 '우리는 해낼 수 있어'(We can work it out)는 명실상부하게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컴비 플레이의 진수를 시범하고 있다.

비틀스는 존과 폴의 전작(全作)이라는 패턴을 확립함으로써 많은 동시대의 뮤지션들에게 '컴비 작업'의 필요성과 효율성(작사와 작곡의 로열티 배당에 따른 갈등이 비교적 적다)을 일깨웠다. 롤링 스톤스도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 커플, 후도 로저 달트리와 피트 타운센드 컴비 그리고 훗날 이글스도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 컴비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비틀스의 업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미국을 정복하면서 롤링 스톤스, 후, 데이브 클락 파이브, 허먼스 허미츠, 애니멀스 등 무수한 영국의 로큰롤 그룹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을 마치 자기네 땅처럼 요리했다. 팝 음악 관계자들은 그 현상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 불렀다.

비틀스는 62년과 66년 사이 쉴 새 없이 히트포격을 가하면서 록이 단지 미국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으며 또한 단순한 로큰롤만 할 줄 알았던 더벅머리들이 고품격의 예술도 한다는 사실을 웅변했다. CD2의 앨범 <러버 소울>(Rubber Soul)에서 골라낸 '여자'(Girl) '미셸'(Michelle)'내 인생의 길목에서'(In my life)와 같은 곡은 이미 인기 스타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성숙했음을 알리고 있다. 그들이 록의 원시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한 천재들이란 사실은 '예스터데이'(Yesterday)'엘리너 리그비'(Eleanor Rigby) 등 클래시컬한 곡에 나타난다.

대중음악의 제반 측면에서 흔히 록은 비틀스에 의해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앨범은 그들의 음악이 초창기부터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가를 뚜렷이 제시하는 역사적인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는 60년대의 다른 그룹들의 베스트 앨범을 같이 들어보면 수긍하게 될 것이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