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teen Seconds>(1980)에서 출발하여 1982년의 <Pornography>까지 이 앨범을 포함한 고딕 3부작은 인간사의 어두운 측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로버트 스미스의 의식 세계의 발현이었다. 이것이 자신만의 자아에서 나온 것인지 시대 의식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어도 이로 인해 밴드가 당시의 고딕 씬에 편입된 것만은 분명하다. 로버트 스미스의 짙은 화장의 선호 또한 고딕의 일원으로 불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앨범은 전작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사운드는 여전히 군데군데 구멍이 난 듯 엉성하며 마치 무언가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준다. 구성은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둔 단순미를 선사한다. 음산하고 불길한 무드를 구현하기 위해 6현 베이스를 사용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로버트 스미스는 이런 사운드 속에서 특유의 우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자신의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두는 듯이.
앨범의 단점은 주의해서 듣지 않으면 곡의 구분이 힘들다는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앨범 전체를 일관된 분위기로 유지했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곡마다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앨범은 당시 영국 지하 세계를 지배했던 고스돔(Gothdom)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이 작품을 포함, 고딕 3부작이 없었다면 밴드 최고의 명반 <Disintegration>(1989)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록곡-
1. The Holy Hour
2. Primary
3. Other Voices
4. All Cats Are Grey (Gallup/Smith/Tolhurst)
5. The Funeral Party
6. Doubt
7. The Drowning Man
8. Fa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