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학생의 고통 대변한 기타천재의 블루스혁명
1967년과 68년 사이키델릭이 대중매체를 지배하고 있던 당시 미국의 젊은 대학생과 흑인들은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반전과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베트남 전쟁, 그리고 2차대전 후 처음 실시된 제비뽑기식 징병제도에 한층 분노한 젊은이들은 민주학생동맹(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 등을 결성, 잇단 거리투쟁으로 기득권자들을 위협했다.
청년들의 과격화로 인해 대중음악의 흐름도 바뀌어 대세는 사이키델릭 록에서 영미 기타 영웅들의 강한 하드록으로 이양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하드록은 기본적으로 흑인음악인 블루스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경찰 최루탄에 눈물을 흘린 시위현장의 젊은이들은 피압박인종인 흑인과 입장의 유사함을 확인하면서, 블루스를 재평가하게 되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과격성과 보조를 맞춘 하드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강하고도 슬픈' 음악이 필요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는 기타 하나로 당시 젊은이들의 이 같은 고통과 투쟁성을 대변했다. 그는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해 '슬피 우는'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정말 그의 기타는 그냥 연주된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울어댄 것이었다. 그는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는' 일렉트릭 기타로 60년대 록을 최고 정점에 올려놓았다.
<경험했나요>(Are You Experienced)는 그의 기타 사운드가 '혁명'의 소산임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 느낌의 기타소리는 혁명적인 주법에 의해서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펜더 스트래토캐스터' 기타만 고집한 그는 앰프와 기타 사이의 피드 백(feed back)방식을 도입하여 악기 고유의 서스테인을 극복했다. 그는 피드백을 통해 앰프와 기타 사이에 '사운드의 이음'이라는 전무후무한 효과를 창조했으며. 와우와우 페달(wah-wah pedal)을 사용하여 기타 톤의 미세한 변화를 그려내는 완벽한 기타 예술의 경지를 연출했다.
『롤링 스톤』지는 이 앨범을 가리켜 “여기서 지미 헨드릭스는 펜더 스트래토캐스터를 통해, 피드백이 노래할 수 있고 앰프가 고통으로 흐느끼는 4차원의 세계로 청취자들을 초대하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동료 연주자 빌리 콕스의 말처럼 그는 '블루스의 혁명화'를 이룩했다.
수록곡 모두가 일렉트릭 블루스의 고전이며 록의 클래식이다. '퍼플 헤이즈'(Purple haze), '헤이 조'(Hey Joe), '불'(Fire), '사랑 아니면 혼돈'(Love or confusion), '조울증'(Manic depression), '써드 스톤 프롬 더 선'(Third stone from the sun) 등등...
그는 기타를 사용하여 연주에 혼을 불어넣었으며 상상력을 동반케 하는 사운드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목소리는 또한 어떠한가. 보컬에 대한 자심감이 없었던 그는 스스로 자신을 '1.5불짜리 보이스를 지닌 밀리언달러 기타리스트'라 했다. 이 앨범을 녹음할 때도 아무도 보지 않는 별도의 소(小)녹음실에서 노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기타와 맞물려 나름대로의 흐느낌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의 기우처럼 듣는 이로 하여금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노랫말에는 예상밖으로 밥 딜런의 영향이 나타난다. 따라서 직접적인 사회참여성 가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사회에 대한 비관적 시각이 두드러지며 체험을 표현하는 도발성이 꿈틀거린다. '퍼플 헤이즈', '헤이 조', '써드 스톤 프롬 더 선'과 앨범 타이틀곡 '경험했나요'는 약물 관련곡이며 '사랑 아니면 혼돈', '난 오늘 살고있지 않아'(I don't live today)는 딜런형의 비관이 스며있다. 기타만큼 무게 있는 가사와 보컬은, 평론가 리처드 골드스타인으로 하여금 “스탈린을 제외하곤 지미 헨드릭스 이상으로 주의를 끈 사람은 없다”는 섬뜩한 극찬을 낳게 했다.
마약관련 곡들, 그리고 재킷에 나타난 멤버들의 복장과 타이틀 자체(字體)는 앨범의 시대적 배경이 사이키델릭 문화가 풍미하던 때임을 말해주는 단서들이다. 이 때문에 평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그의 음악을 '사이키델릭 블루스'라 규정한다. 따라서 이 앨범은 시대적으로 사이키델릭과 영미 기타리스트들의 하드록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다. “이 앨범에 헤비 메틀(하드록의 새 이름)의 원형이 나타난다.”는 평가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룹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지미 외에 미치 미첼(드럼), 노엘 레딩(기타)으로 짜여졌다. 스튜디오 전체를 활용하여 기타 오케스트레이션을 펼치는 데 나머지 두 사람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앨범의 '다층적인' 사운드가 완성될 수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의 천재라는 말 외에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실험과 도전으로 폭발적인 음을 비롯한 다양한 기타사운드 효과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분명 그는 천재였다. 70년 9월 18일 그가 죽었을 때 에릭 클랩튼은 하루종일 울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스로 기타의 신(神)이라 여기며 뻐기고 있던 자신에게 충격을 가한 천재의 사망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실로 일렉트릭 기타의 듣는 방법이나 연주하는 방식을 바꾸어버린 인물이었다. 『LA 타임즈』지는 90년 “그는 지금도 위대한 아티스트로 하여금 관련 일렉트릭 기타 음악을 판단하도록 하는 준거점”이라고 했다.
도어즈의 키보드 주자 레이 만자렉은 같은 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기타연주는 짐 모리슨의 가사가 그랬던 것처럼 '집합적 무의식'을 두드렸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천재로 추앙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진짜로 천재였기 때문이다.”
록 팬들은 그를 접한 이후로 뒤에 나타난 연주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지금까지 그의 사운드를 낡은 기념품으로 내려 앉히는 혁신적인 무엇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