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여름에 세상을 뜬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현세로 신보를 보냈다. 그것도 라이브 음반이나 베스트 컴필레이션 같은 앨범이 아니라 열두 곡으로 디스크 한 장 꽉 채운 스튜디오 앨범이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생전에 발매했던 정규 작품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실황 음반이나 뒤늦은 기념 음반에서나 볼 법한 노래의 스튜디오 버전이 트랙 전반에 배치되어있다. 혹시나 하여 궁금증을 가져본다. 이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어디서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마치 끊이지 않고 생존설이 도는 투팍(2Pac)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잠시 품었던 의문점은 그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하는 안타까움에서 나온 토로(吐露)일 뿐이다. 그러나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당시의 데모 테이프를 깔끔하게 리마스터해 복각시켰다는 음반사의 설명이 사실은 지미 헨드릭스와 관계자들이 짜고 친 사기극이라 하더라도, 이 전설적인 뮤지션이 지금도 기타를 잡고 있다면 듣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겠는가. 밥 딜런(Bob Dylan),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닐 영(Neil Young) 등 리빙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를 상상해보라. 아쉽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물론,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각설하고 작품으로 돌아가자. < People, Hell And Angels >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이 앨범은 1968년부터 1969년 사이에 녹음된 곡들과 지미 헨드릭스가 죽기 해인 1970년 무렵에 녹음된 곡들을 담고 있다. 작품을 접한 입장에서 놀라운 것은 1969년대 말에 녹음된 곡들이 깔끔한 사운드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전면에 서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솔로나 보컬은 물론,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 시절 이후에 조직한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의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Billy Cox)와 드러머 버디 마일스(Buddy Miles)의 연주도 생생하다. (익스피리언스의 드러머 미치 미첼도 세 트랙에 가세했다.)
컬렉터들의 소장 욕구를 더욱 자극하는 것은 그보다도 트랙리스트에 수록된 노래들에 있다. 지미 헨드릭스의 골수팬들이라면 라이브 앨범이나 베스트 앨범의 데모 곡으로 여러 번 접해봤을 곡 제목들이지만, < People, Hell And Angels >의 싱글들은 당시의 버전들과 러닝 타임이 다르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 공개된 판(版)이라는 것이다. 오랜 기간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해왔던 이름 있는 엔지니어인 에디 크레이머가 '미공개 스튜디오 곡들을 마지막으로 공개하는 차례'라고 언급한 사실은 록 팬들의 소구력을 더욱 자극한다.
파워풀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Earth blues'나 사이키델릭 시대의 대축제 1969년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던 'Villanova junction blues', 엘모어 제임스(Elmore James)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Bleeding Heart'처럼 이전에 선보였던 곡들은 물론, 절정에 오른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가 수놓인 'Inside out'과 걸쭉한 블루스 곡 'Hey gypsy boy'과 같이 새로 선보인 트랙들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1960년대 말의 사이키델릭 넘버들보다는 세기가 화려함이 약하나, 걸쭉한 그루브와 연주력에 감탄할 수 있는 블루스에서 전과는 다른 듣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탄생 몇 주기'나 '앨범 발매 몇 주기'와 같은 뚜렷한 시의성 혹은 대작 행렬을 잇는 기념비적인 역사성이 음반에 없을지라도 레전드를 다시 만나는 일에는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전에 볼 수 없는 작품들로 재회하는 것이지 않은가. 흔한 표현을 빌린다면, 언제고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다. 지미 헨드릭스뿐만 아니라 팝 음악의 르네상스를 수놓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자취를 우리는 여러 번 복원해 왔다. 음반사의 지나친 상업 술수를 제외한다면, 전설을 현대로 견인해 오는 작업은 그 어느 순간도 헛된 적이 없었다. 그 의미 있는 중업(重業)은 올해 < People, Hell And Angels >라는 결과물을 내보이는 데 성공했다.
-수록곡-
1. Earth blues [추천]
2. Somewhere
3. Hear my train a comin' [추천]
4. Bleeding heart
5. Let me move you
6. Izabella
7. Easy blues
8. Crash landing
9. Inside out [추천]
10. Hey gypsy boy
11. Mojo man [추천]
12. Villanova junction blu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