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으로 가득 찬 < 위키드 > 글린다의 다음 장이 흑백으로 쏘아붙이는 우아한 분노일 줄 누가 알았을까. 분홍빛 영화와 더불어 2024년 < Eternal Sunshine >으로 스스로를 감싸안던 따스함은 곧장 서늘한 칼날이 되어 그를 지킨다. 자조 섞인 위트도 도발적인 사랑스러움도 없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소비하는 이들을 향해 가장 큰 무기인 솔직함과 음악으로 난사한 그는 피칠갑을 하고 카메라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짓는다.
가십에 이골이 난 팝스타의 넋두리라기엔 의제가 꽤 중대하다. 연애사와 사생활은 물론 건강 상태까지 잣대 삼아 심판대에 올린 세상에는 ‘Petal’의 불안한 왈츠 리듬으로 응수했지만, 'Hate that I made you love me'는 연대의 대상을 넓혀 관계의 책임을 여성에게 묻는 세태를 정면으로 통찰한다. 아티스트를 향한 가학성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가에게 고통은 곧 축복이라는 비틀린 낭만화에 순응하지 않고 음악과 성공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보인다.
방어기제 사이 진심을 갈망하는 마음이 비친다. 연애를 넘어 세상에 대한 애착을 고백하는 ‘Kiss me’를 첫 트랙에 둔 점이 대표적인 예다. 아무리 어두운 사운드로 음산함을 의도했더라도 이전 < Eternal Sunshine >의 온기 또한 그의 내면 중 하나라는 걸 상기시키는 장치기도 하다. 논란 가득한 연애를 경험했음에도 또다시 진지한 관계를 바란다는 ‘Stay’나 사랑을 예찬한 ‘Never get over me’ 역시 그 연장선. 진정성에 대한 모색으로 완성한 입체성을 단순한 독기로만 보기는 아깝다.
널뛰는 심상을 사운드로 묶어낸 절제가 절묘하다. 직전 앨범과 < Petal >을 거치며 선명한 멜로디를 직조하던 맥스 마틴과 달리 일리야 살만자데의 프로덕션은 선율보다 조율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로맨틱의 공백을 채운 공포 또한 같은 맥락이다. 너른 공간감 위로 신시사이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가성이 교차하며 이질감을 증폭하는 동시에 기묘한 우아함을 자아낸다. 여러 메시지가 오가는 와중에도 ‘Oh well’의 드럼 앤 베이스, ‘Like I do’의 트랩 비트 등이 튀지 않고 녹아드는 이유다.
그는 어쩌면 사랑보다 대중에 능할지도 모른다. 끔찍한 순간마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음악적 집착과 애정을 드러낸 이번 작품의 울분에도 어김없이 따르는 환호가 그간의 해탈에 힘을 싣는다. 독보적인 가창 실력을 내려놓고 힘을 뺀 보컬로 트랙을 가득 채운 아이러니한 태도의 원천은 자신감만큼이나 큰 허탈에 있다. < Petal >은 가사 속 메시지를 넘어, 자신의 명성이 음악 이상의 자극으로 소비될 것까지 이미 간파한 팝스타의 씁쓸한 응시다.
-수록곡-
-수록곡-
1. Kiss me
2. Hate that I made you love me [추천]
3. Petal [추천]
4. Stay
5. Oh well
6. Big feelings
7. Freak [추천]
8. Warning signs (interlude)
9. Like I do [추천]
10. Never get over me
11. Bad thing (bunny hop)
12. Nowhere, nobod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