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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eflow’ Pt.1
르세라핌(LE SSERAFIM)
2026

by 박시훈

2026.06.08

매번 다른 콘셉트와 장르를 선보이지만 르세라핌의 목적은 언제나 동일하다. 외부의 기법을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하고 해당 문화권의 특성까지 접목하여 K팝 신의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저지 클럽 열풍을 주도했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에 이어 ‘Smart’의 아프로비츠와 ‘Crazy’가 포착한 해외 클럽 신의 기류를 돌아본다면 그룹의 활동이 아이돌 음악의 규격을 넓히고 있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두려움이 없다’라는 표어를 재해석한 이번 정규 2집의 감상점이 모호한 것 역시 같은 이치에서다. 이들이기에 감행할 수 있었던 모험과 그에 따른 불균형이 공존한다. 


타이틀 ‘Boompala’는 예상외로 팀의 특징이 잘 묻어난 곡이다. 1990년대 라틴 물결을 대변하는 ‘Macarena’를 샘플링하여 자칫 원곡의 존재감에 잠식될 뻔도 했으나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직전 싱글 ‘Spaghetti’를 참고하면서 안정감을 취했다. 모두가 하우스의 정박자 비트를 사용하는 지금, 르세라핌은 익숙한 재료들을 낯설게 조합하여 차별점을 마련한다. 주문을 외는 듯한 능청스러운 벌스(Verse)의 멜로디와 정석적인 후렴의 조화가 신선하고,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마감 처리는 음악 전반에 분산된 요소들을 한데 엮어낸다. 굳어진 K팝의 질서에 변수를 던져 왔던 이들다운 면모다.


물론 도전 정신만으로 전체를 지탱하기에 부족한 건 사실이다. 애초부터 간결함을 추구하는 음악이며, 이러한 의도는 곧 뒤이은 수록곡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쳐주느냐에 따라 완성되기 때문. 아쉽게도 호기로운 탐색은 여기까지다. ‘No celestial’의 후속작 격인 ‘Creatures’와 2010년대부터 유행한 여러 EDM의 공식을 합친 ‘Iffy iffy’는 실험적인 타이틀과는 상반된 일반적인 작법을 택했다. 서사를 염두에 둔 가사가 함께 하더라도 각기 다른 목표를 바라보는 트랙들은 결국 그룹의 고유성 대신 채택한 장르의 인상만을 남긴다. 정갈하게 정리된 진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팀의 개성보다는 양질의 데모를 수급하는 소속사의 네트워크다. 


한마디로 지향점이 흐릿하다. 앞세우는 주제와 사운드가 어찌 됐든 그룹은 다국어 인트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고, 최근 하이브에서 밀고 있는 왜곡된 보컬 이펙트(‘Sonder’)를 계승해야 하며, 아이돌에 걸맞은 의례적인 수록곡(‘Trust exercise’)까지 챙겨야 한다. 오히려 퀴어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넓히려는 ‘Saki’나 짧게 스치더라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우리 어떻게 더 사귈 수 있을까’가 직관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마다의 주장은 뚜렷하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으니, 장황한 구조 속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렵다. 모든 것을 쟁취하려는 야심이 르세라핌을 K팝 신의 혁신가도 정통파 걸그룹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가두고 만다.  


선공개 곡 ‘Celebration’이 본작의 명암을 예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드 테크노의 공격적인 접근으로 흥을 끌어올리다가도 대중적인 틀에 맞춰 급히 제동을 거는 전개처럼 < ‘Pureflow’ Pt.1 >은 파격과 보편성 사이의 회색 지대에 머무는 음반이다. 보기 드문 메인 트랙을 통해서 그룹의 퍼포먼스를 발산하기에는 나머지 수록곡들이 상당히 수동적이고, 펼쳐 온 이야기에 살을 붙이자니 주요 넘버가 외따로 놓인다. 사실 지금의 르세라핌에게는 독창적인 메시지도, 바깥의 동향과 최신 사운드도 모두 우선순위가 아니다. 무엇을 더할지가 아닌 어디에 무게를 실을지가 관건. 풍성한 아이디어가 꼭 선명한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수록곡- 

1. Pureflow

2. Boompala [추천]

3. Celebration 

4. Creatures

5. Iffy iffy

6. 우리 어떻게 더 사귈 수 있을까 [추천]

7. Sonder

8. Saki (Feat. Aliyah’s Interlude) [추천]

9. Irony

10. Trust exercise

11. Liminal space

박시훈(sihun66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