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처럼 작년에 비해 주춤하다. 상반기 ‘Supernova’와 ‘Armageddon’, 하반기에는 ‘Whiplash’로 2024년을 지배했던 에스파에게 2025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Dirty work’까지는 현상 유지라 쳐도 < Rich Man >은 립싱크 등 외부적인 논란을 제쳐두더라도 광풍과도 같았던 기세가 한풀 꺾인 모습이다. 차트와 숫자로 보여지는 성과를 떠나 음악에서도 보이는 문제다.
원작자 캐너(Kanner)의 버전과 비교한 영상을 보면 ‘너무 약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기타 디스토션의 감소는 멤버들의 음색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편곡이겠으나 그 공석을 채우는 것이 캐치프레이즈 ‘I’m a rich man’의 지나친 반복일 필요는 없었다. 핵심 문구임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니 가수 셰어의 발언에서 따온 도입부가 빚은 자주적 여성상도 일개 광고 문구로 전락한다. ‘랄랄라’로 느슨하게 처리한 첫 후렴까지 가세하면 노래는 그저 맹목적 자기 자랑으로 점철된, 알맹이가 부재한 껍데기 상태다.
아껴둔 화력을 후발대에 넘겨줬나 싶지만 나머지를 둘러봐도 그런 흔적은 찾기 힘들다. < Drama >부터 시작된 광야/현실 식 이분법적 무드 구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텅 빈 연료통뿐. 제목과 달리 조용히 지나가는 ‘Drift’와 임파워링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관습적인 팬 송과 다르지 않은 ‘To the girls’ 사이에서 < Savage > 수록곡 ‘자각몽’의 속편이 되기 위해 애쓰는 ‘Count on me’와 ‘Better things’의 저자극 팝을 계승하려는 ‘Angel #48’의 노력이 애처롭다.
한 번 높아진 역치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적절했다면 좋았겠다. 몬스터 트럭이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일렉트릭 기타와 피크로 장식한 록스타 콘셉트는 ‘강한’ 에스파에 대한 기대감을 일부러 배반하려는 시도로 보일 여지조차 앗아간다. 고의적인 우회 전법도, 시의적절한 안식년도 되지 못한 게으른 앨범. 한 끗 차이로 자신감은 오만함이 되었다.
-수록곡-
1. Rich man
2. Drift
3. Bubble
4. Count on me [추천]
5. Angel #48 [추천]
6. To the gir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