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달라’로 등장한 있지가 더이상 다를 게 없어졌다. K팝이 트렌드를 면밀히 관찰한 뒤 그것을 수혈하는 데 능통한 필드라지만 방식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찰리 XCX가 만든 < Brat >의 광풍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있지의 신보가 될 필요는 없었다. 굉장히 높은 산을 목적지 삼은 탓에 중턱은커녕 초입도 넘지 못했다. 레퍼런스의 존재감이 쏟아내는 직사광선이 그림자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Kiss & tell’과 ‘Walk’는 찰리 XCX와 보컬에 건 튠, 비트, 멜로디를 만드는 방식마저 유사하다. 심지어는 음절을 욱여넣는 등 허점이 여럿 보이며 계산 착오를 동반해 모방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여러모로 안일함이 빚어낸 패착이다. 더구나 음악은 가격 차이가 큰 폭으로 나타나는 상품도 아니고, 누구든 월정액 요금제로 스트리밍을 이용하기에 값은 동등하다. 그렇다면 그 누가 발전 없는 재생산을 반기겠는가. 답습 사이에서도 있지만의 답이 보였어야 선뜻 플레이리스트에 담길 텐데 말이다.
타이틀은 그나마 전작인 ‘Gold’에 비해 낫다. 이들의 장점인 퍼포먼스가 들어갈 공간이 더 확보되며 무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데뷔부터 ‘Not shy’까지 4연타를 날리던 그룹의 아성에 입각하면 한없이 미약한 결과. 게다가 지난 앨범을 파고들면 ‘Imaginary friend’가 숨은 강자처럼 존재했으나 이번엔 반대로 드러낸 패의 고점이 낮은 사례다. 랩과 타격감 있는 비트, 기타 독주가 혼연된 ‘Lock n loaded’ 정도가 뒷배를 채워주지만 왜소함이 달라지진 않는다.
있지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어 프로듀싱 차원에서 수습이 불가피해 보인다. 비단 이번 때문만은 아니다. 넓게 보면 ‘마.피.아. in the morning’을 필두로 한 2021년 < Guess Who >부터, 좁게 보자면 작년의 < Born To Be >와 < Gold > 등 여러 앨범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빚었다. 아주 소폭의 우상향도 때로 있었으나 하향세가 꾸준하게 이어지니 반등의 노림수에도 힘이 빠진다.
어느덧 7년 차, 아이돌 그룹에게 분기점이 되는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서막과 다르게 현재 통 예전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니, 더 치열한 고민과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 왔다. 고뇌를 마친 다음엔 초창기의 그 아성을 다시 한번 이을 제2막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미션을 사이에 둔 모든 극의 최종 엔딩은 1이 아닌 2, 막이 바뀌는 건 실패가 아니라 전환의 기회다. 지금이야말로 두 번째 도약을 꾀할 때. 멤버들의 역량이 출중한 만큼 용두사미로 기록되기엔 아쉬운 팀이다.
-수록곡-
1. Girls will be girls
2. Kiss & tell
3. Lock n loaded [추천]
4. Promise
5.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