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수미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 과거의 잔상을 마주한다. 개러지 록과 서프 록, 드림팝과 슈게이징, 매드체스터와 브릿팝, 사이키델릭과 펑크 등 똑 떼어놓기 어려운 장르 간의 경계를 유영하는 움직임 같은 것들이다. 앞만 보기도 어려운 시대에 뒤를 돌아볼 줄 안다는 사실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되어 차별점으로 작용했다. 일찍이 끌어안은 두께만큼이나 음악은 나날이 견고해졌고, 구태여 하나의 결로 맞추려 들지 않았던 소탈의 자세까지 겹쳐 듣는 이의 부담을 덜어내며 친숙함을 더했다.
다섯 곡의 얇은 두께를 이겨낸 건 이번에도 선택의 힘이다. 우선 밀레니엄을 전후한 시기, 속도감보단 멜로디에 집중하던 인디 록의 향취가 기저에 존재한다. 그간의 이미지에 비하면 뒤쪽에 자리 잡은 형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용과 혼합의 영역이지 일방향을 의미하진 않는다. 1988년 결성된 영국의 슈게이즈 밴드 라이드의 초기작 ‘Like a daydream’ 풍의 냉담한 연주와 드림팝 대열의 영원한 기수 콕토 트윈스의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의 달큰한 꿈속 읊조림을 한데 섞은 다면의 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세이수미의 본질은 복합장르의 미학에 있다. 이들을 여전히 서프 록만으로 설명하는 건 무리다.
거친 사운드와 극점에 서 있는 최수미의 보컬에 흡사한 그림체로 녹아든 실리카겔 김한주와의 합작 ‘Vacation’은 그래서 세이수미만의 소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한계를 돌파한 셈. 덕분에 ‘In this mess’는 홀로 6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맡았음에도 길게 느껴지지 않고, 잇따른 ‘Mexico’ 또한 노랫말 없이 연주만으로 채워졌음에도 지루하지 않다. 이렇듯 맥락은 유사할지라도 차용한 소스는 서로 다른 결정 위로 시간성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덧대 음반 단위의 부피를 살린 모습이다.
재차 말하고 싶다. 서프 록과 부산은 밴드에 더없이 중요한 키워드겠으나 이것만으로 이들의 음악을 상감하려 드는 태도는 자기 고착화를 인정하는 꼴이다. 오늘날 세이수미는 < Where We Were Together >의 매끈한 뜀박질과 < The Last Thing Left > 속 산보의 여유를 간직하되 그 접근을 달리하며 못 가본 길을 찾는다. 현세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운드를 품은 독보적 개성이야말로 도전의 연속이자 큰 틀에서의 발전상을 표상하기도 한다. 다양성이 그리운 시점, 기꺼이 파편이 되기로 마음먹은 그들의 그래프는 아직 우상향을 그린다.
-수록곡-
1. Time is not yours
2. Vacation (Feat. Kim Hanjoo) [추천]
3. In this mess [추천]
4. Mexico
5. Bone p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