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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 Tales
톰 요크(Thom Yorke)
마크 프리처드(Mark Pritchard)
2025

by 정기엽

2025.05.16

유능한 인물들의 조합이 반드시 곱절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진 않는다. 1991년부터 무수한 전자음악을 섭렵한 프로듀서 마크 프리처드와 라디오헤드의 프론트맨 톰 요크의 첫 합작은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잔여물도 존재한다. 그저 합치기만 했을 뿐이라 여겨지는 첫 곡 ‘A fake in a faker’s world’가 대표적. 팬데믹 시기부터 비대면 작업에 착수한 탓인지 8분이 넘는 러닝 타임동안 그들은 “우리”가 되기보다 단순히 너와 나로 남겨져 평행선을 잇는다.


네 번째 곡인 ‘Back in the game’에서야 이들의 반복된 독주 끝에 합동 작전이 펼쳐진다. 밴드 디 엑스엑스(The XX) 멤버 올리버 심의 솔로 < Hideous Bastard >를 연상시키는 스산한 분위기로 말 그대로 복귀에 방점을 둔다. 어느덧 50대 후반에 접어든 톰 요크가 30대 뮤지션의 녹음과 붙여 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생기를 자아내는 모습은 제법 놀랍다. 프리처드 역시 별종에 가까운 소리 직조로 보컬을 에워싸는 데 힘쓴다.


앞선 첫 트랙과 똑같은 시간을 쓰는 ‘The white cliffs’는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이쯤부터 대면하며 합을 맞춘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마크 프리처드가 편성한 연주 위에 톰 요크가 흘린 고저를 오가는 보컬 톤이 각운을 준다. 음반 내에서 제일 편안한 청취를 돕는 ‘The spirit’과 ‘The men who dance in stag’s heads’까지, 전반부 세 곡을 놓친 이래론 적극적인 용해로 협동에 걸린 기대치에 부응한다. 특히 후자의 두 곡은 독특한 사운드를 향한 집념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음악의 난해를 해소했다는 의의가 크다.


톰 요크가 가창만 맡지 않고 사운드도 함께 제작했듯, 두 사람이 심연을 파고든 집요함의 ‘Gangsters’는 본작에서 가장 뛰어나다. 마크 프리처드의 최근 개인 프로젝트의 기조를 잇는 빠른 비트에 톰 요크의 기이한 작법을 얹으며 친숙하면서도 실험적인 오묘한 지점을 파고든다. 먼 공간감의 드럼 머신 타격이 귀를 사로잡는 ‘Happy days’도 을씨년스러운 흥겨움으로 < Tall Tales > 후반 리듬을 견인한다. 공포 서커스 같은 괴상한 정서가 본작을 관통하는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2016년 둘의 첫 콜라보였던 ‘Beautiful people’을 기억한다. 전자음이 기묘하게 자연 감각을 들추는 6분, 당시에는 톰 요크라는 존재가 더 커다래 보였다. 하지만 지금, 라디오헤드에 이어 더 스마일까지 차곡히 쌓아 올린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마크 프리처드의 존재감이 앨범 전반을 채운다. 둘의 상성이 완벽하진 않았더라도, 누구 하나가 꿀리지 않는 공존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들의 악수는 깔끔하다. 한 시간짜리 짙은 어둠의 세계가 손가락 스무 개의 현란함 속에 탄생했다.


-수록곡-

1. A fake in a faker’s world

2. Ice shelf

3. Bugging out again

4. Back in the game [추천]

5. The white cliffs

6. The spirit [추천]

7. Gangsters [추천]

8. This conversation is missing your voice

9. Tall tales

10. Happy days [추천]

11. The men who dance in stag’s heads [추천]

12. Wandering Genie

정기엽(gy247@naver.com)